[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일본, 중남미 진출 20년 앞서…한국도 투자 서둘러야"…기업 몰리는 'FTA 허브' 멕시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세계 생산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자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신흥국의 통화 평가절하, 원유 등 원자재 가격 하락은 세계 경제 패러다임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들도 경제적 불안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멕시코는 47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수출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멕시코의 경쟁력은 거대 시장인 미국과의 인접성, 값싼 양질의 노동력, 페소화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 활성화 등이다.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이웃에 둔 멕시코는 대미(對美) 수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보호무역주의로 유명한 브라질과 달리 멕시코는 개방적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6’ 순위에서 멕시코는 189개국 중 38위로 ‘중남미 국가 가운데 사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과의 교역 규모도 2014년 141억달러로, 브라질을 제치고 중남미 국가 가운데 제1의 교역 대상국으로 떠올랐다.

미주지역에서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 연결성이 뛰어난 멕시코는 ‘젊은 국가’이기도 하다. 초·중·고교생만 2400여만명에 이른다.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걱정하는 것과 달리 멕시코는 젊은 경제활동 인구층이 두텁다.

멕시코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에는 ‘테킬라 효과’로 알려진 멕시코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부실은행 정리, 은행 합병 등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한 구조개혁을 신속히 추진해 대외신인도를 조기에 회복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멕시코는 비교적 건실한 성장을 이뤘다. 2012년 취임한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방송통신, 에너지, 금융, 조세 등 경제뿐 아니라 선거제도,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강력한 시장 개방정책과 개혁정책을 추진해 불안정한 세계 경제 속에서도 건실한 거시경제 지표를 유지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또 오랫동안 독점적 시장이던 석유, 전력시장과 통신시장을 과감히 개방해 자유 경쟁을 허용함으로써 관련 요금 인하뿐 아니라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일본 브라질 등 47개국과 15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각종 법과 제도는 미국 수준의 선진제도를 표방하고 있다.

[대사들의 특별 리포트] "일본, 중남미 진출 20년 앞서…한국도 투자 서둘러야"…기업 몰리는 'FTA 허브' 멕시코
최근에는 페루, 칠레, 콜롬비아와 함께 ‘태평양 동맹’을 발족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42개국이 앞다퉈 옵서버로 가입하는 등 새롭게 떠오르는 무역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등 12개 국가와 합의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오는 2월 뉴질랜드에서 서명될 예정이고, 비준이 완료되면 멕시코는 아시아·태평양, 북미, 중남미의 FTA 허브 국가가 될 것이다.

일본은 중남미 진출이 한국보다 20년가량 앞서 있다. 일본 정부는 닛산, 도요타, 혼다, 마쓰다, 스즈키 등 일본 자동차공장과 부품업체들이 몰려 있는 과나후아토주(州) 주도 레온시에 총영사관을 열 예정이다. 자국 기업과 기업인들의 투자 진출과 수출 등 경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중국도 호시탐탐 거대 자본을 배경으로 멕시코 등 중남미를 공략 중이다. 유럽 기업들도 멕시코에 차곡차곡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와 인접한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삼성전자, 현대트랜스포트(옛 현대정공), LG전자 등이 미국 시장을 겨냥해 전자제품과 컨테이너를 생산하고 있다. 2014년 하반기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협력업체들이 누에보레온주에 연간 30만대 생산을 목표로 공장 완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연 1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해 북미 생산거점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티후아나, 몬테레이, 과나후아토, 케르타로 등에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트랜스포트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은 최근 3년간 평균 매출 기준 실적이 두 배로 늘었다. 올해는 미국에서 증가하는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에너지 분야의 한국 기업 진출도 눈에 띈다. 한국전력은 삼성물산과 협업해 태평양 연안 치와와주에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해 운영 중이며, 한국가스공사는 태평양 연안 만사니요에 LNG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멕시코 살라망카에 있는 국영정유회사인 페멕스의 노후된 정유시설을 현대화하는 5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최근 수주했다. 멕시코 투자 진출에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자동차 전장부품, 석유화학, 전기전자, 철강 등이다.

중남미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환율이다. 다른 신흥경제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의 화폐는 미국 달러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행히 최근 달러화 대비 멕시코 페소화의 급격한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2%대의 사상 최저 물가를 유지하는 등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와 관련, 멕시코 내수시장을 겨냥한 한국 기업들의 대(對)멕시코 수출은 어려움을 겪는 반면 멕시코에 진출한 기업들은 수출 확대에 필요한 생산시설을 늘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정부와 함께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투자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가 멕시코를 ‘미래의 글로벌 생산공장’으로 보고 투자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멕시코는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많은 나라로부터 항공노선 신설 수요가 증가하고, 포화상태에 이른 멕시코 국제공항도 2020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신공항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 외에도 중남미 국가들을 비롯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멕시코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처로 주목받으면서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멕시코에 일고 있는 한류 붐이 양국관계 강화와 한국 기업의 멕시코 진출에 활력제로 작용할 것이다. 공식 한류 팬만 14만6000여명에 이른다. 인기 그룹 빅뱅 공연에서 1만8000여 객석이 금세 동났고, 최근 ‘임학선 댄스 위’ 전통 무용공연에도 3200여명이 찾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멕시코를 비롯해 중남미 시장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진출을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전비호 < 주멕시코대사 bhchun80@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