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사모펀드와 손잡고 지분 100% 1335억원에 인수
국내 메이저 모두 외국계로 재편
경영승계 난관·성장한계 직면한 '히든챔피언' 속속 해외에 팔려
국내 안경 렌즈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는 2위 업체 대명광학이 미국 안경 렌즈 제조업체 비전이즈에 1335억원에 팔린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에는 국내 1위 업체 케미그라스가 프랑스 에실로의 국내합작사 에실로코리아 인수된 바 있다. 케미그라스의 시장점유율은 22.7%다. 이로써 국내 안경 렌즈시장은 점유율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외국계가 장악하게 됐다. 이들 ‘빅4’의 시장 점유율은 76.3%에 달한다. 세계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던 한국 안경 렌즈업계가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해 외국계에 잠식당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비전이즈와 이 회사의 모회사인 사모펀드 윈드포인트파트너스는 지난해 10월 퍼포먼스옵틱스라는 특수목적회사(SPC)를 국내에 설립하고 대명광학 지분 100%를 인수했다.
윈드포인트파트너스는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 전문 사모펀드로 2014년 9월 비전이즈를 인수했다. 추가 인수를 통해 비전이즈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명광학을 사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명광학의 기존 최대주주인 이경석 대표는 고문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명광학은 이 고문이 1985년 설립한 안경 렌즈 제조업체다. 1988년 설립된 케미그라스와 함께 국내 안경 렌즈시장을 질적, 양적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에는 무역의 날에 ‘5000만불 수출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부가 렌즈시장은 에실로 등 선진국 업체들에, 중저가 렌즈시장은 중국 베트남 업체들에 잠식당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서 더 이상의 성장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대명광학의 매출은 2012년 107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974억원, 2014년 883억원으로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영업이익도 2012년 173억원에서 2013년 137억원, 2014년 130억원으로 감소했다. 15%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줄어드는 추세다.
대명광학은 당초 세계 최대 안경 렌즈업체인 에실로에 지분 50%를 넘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에실로코리아와 케미그라스를 통해 이미 국내 시장의 37%를 점유하고 있던 에실로가 대명광학까지 인수할 경우 시장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를 불허했다.
2012년 현재 국내 안경 렌즈시장 점유율은 케미그라스(22.7%), 대명광학(22.0%)에 이어 일본 호야(17.1%), 에실로(14.5%), 한미스위스광학(8.5%) 등의 순이다.
비전이즈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본사를 둔 중견 렌즈 제조업체다. 이번 대명광학 인수를 통해 고굴절 렌즈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하고 아시아 시장으로 판매처도 다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명광학도 북남미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2014년 비전이즈 인수로 안경 렌즈업계 투자를 시작한 윈드포인트는 약 5~6년 뒤 비전이즈와 대명광학을 묶어 팔아 차익을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IB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에는 경영 역량이 부족한 ‘히든챔피언’ 기업들이 외국계에 팔려나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창업자 2세가 경영을 원하지 않는 등 경영권 상속이 어려운 기업들이 계속 국내에 머물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창재/정영효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