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거래소에 10년 이상 뒤처져…'개혁이냐 도태냐' 선택해야
핵심은 KRX 지주체제 전환과 기업공개…연내 관련법 통과 시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래소 지주회사화와 기업공개(IPO) 등 구조 개편을 하지 않고 버티는 나라는 몇 나라나 될까.

유럽의 변방 슬로바키아와 아시아 자본시장의 변방 대한민국뿐이다.한국은 글로벌 자본시장은커녕 아시아 자본시장에서 주역 대접을 못받고 있다. 그저 변방일 뿐이다.

자본 이동 자유화, 금융 IT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지금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국경 없는 전(錢)의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국경을 넘어 거래소 간 합병에 따른 거대 글로벌 거래소가 탄생하고, 연계 비즈니스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한국거래소(KRX)의 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거센 가운데 우리나라가 KRX 구조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와 그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되짚어본다.

◇ '혁신이냐, 도태냐'의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 자본시장

자본과 금융시장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경쟁국은 한 발짝 한 발짝씩 앞서 가고 있다.

특히 주요 국가 거래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이미 거래소 지주회사화와 기업공개를 완료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2000년대 중반 이미 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글로벌 흡수합병(M&A) 시장, 신사업 진출에 나서진 오래다.

OECD 국가만이 아니다.

아시아 주요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신흥시장마저 구조 개편을 속속 완료하고 우리보다 앞줄에 섰다.

더욱이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거래소를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해 2013년 상장하고 싱가포르와 대만 등과의 연계 거래를 확대하는 등 아시아 시장 주도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0년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 추진을 조기에 완료한 홍콩은 이를 바탕으로 2012년 런던금속거래소 인수 등 적극적인 글로벌 흡수합병(M&A)을 전개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아시안 게이트웨이'(Asian Gateway)를 표방하고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KRX는 '우물 속 개구리' 마냥 독점적 시장 지위에 만족한 채 안주했고, 정부마저 2009년 1월 KRX를 공공기관으로 지정, 국제적인 변화 흐름에서 소외됐다.

공공기관 지정 해제 후 뒤늦게나마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 작업 등 KRX 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었지만, 이런저런 오해와 벽에 부딪혀 좀처럼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KRX가 지금부터 구조 개혁을 시작해도 국외 경쟁거래소와 비교해 10년가량 뒤처진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거래소 중심인 우리 자본시장의 특성상 KRX 경쟁력 저하는 기업의 자금조달 곤란과 시장 전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많은 금융전문가는 'KRX 구조 개편이 더딜수록 우리 자본시장은 변방시장의 늪에서 헤어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 "코스닥만 분리 안 돼, 자본시장 전체 경쟁력 제고"
글로벌 환경에 둔감했던 KRX에 대한 구조개편 논의는 코스닥 시장을 통한 모험자본의 육성 차원에서 거래소가 2005년부터 통합해 운영 중인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다시 분리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그나마 시작됐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코스닥 시장 분리가 거래소 통합 성과로 이룩한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반론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신 코스닥 시장만이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KRX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 주장은 시장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처럼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소유구조 개편(IPO)으로 시장(자회사)간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자는 개편안이 만들어졌다.

◇ "지금이 자본시장 재도약을 위한 골든타임"

우리 자본시장은 2010년 이후 시장 활력 저하와 국외 거래소와의 경쟁 심화라는 이중고 속에 성장과 침체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자본시장 성장 추세가 둔화하는 등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시가 총액 성장률이 2010년 이후 연 2%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월평균 거래대금은 2011년 118조원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 기관 투자자의 국외투자 확대,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직접투자 열풍 등으로 유동성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투자는 2011년 24억9천 달러에서 2014년에는 79억9천 달러로 221%나 증가했고, 해외지수 파생거래도 2011년 36억 달러에서 2014년에는 228억 달러로 533%로 급증했다.

반면 KOSPI200 선물·옵션 이후 시장을 대표하는 상품을 내놓지 못해 해외투자자의 국내 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외에서도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다른 아시아 경쟁국보다 낮게 평가하는 등 시장 활력 저하가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

세계경제포럼(WFF)은 2015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47위, 자본시장 규제 안정성은 78위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

많은 전문가는 '이 때문이라도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KRX 구조 개편으로 '시장 전체 경쟁력과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거래소 통합 이후 오랜 독점과 코스닥 시장의 정체성 상실로 혁신·벤처기업의 모험자본 조달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단일 거래소에서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을 함께 운영하다 보니 시장 차별성이 약화하고 시장 혁신도 부족하다.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스타트 업(Start-up) 기업, 혁신·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자본시장 개편은 서둘러야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교수(전 금융연구원장) 등은 '지금이 KRX 구조 개편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지난 6년간 성장이 뒤처졌는데 이번 구조 개편을 계기로 글로벌 거래소로의 도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KRX 구조개편 핵심은 지주회사 체계 전환과 기업공개"

현재 KRX의 문제점으로 회원 중심의 폐쇄적 주주 구성, 비상장법인이라는 한계, 기업가적 경영역량의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KRX 구조개편 핵심은 이러한 문제점을 일소할 수 있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과 소유구조 개편(IPO)'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거래소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고, 그리고 코스피, 코스닥, 파생상품시장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분산형 조직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면 자회사별로 중복기능 증가 등 방만 경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먼저 지주체제로 전환하고, 기업공개를 통해 수익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체계를 도입함으로써 구조 개편 이후 계열사 간 경쟁을 촉진하고 방만한 조직운영 소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지금 국회에서 심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 법안의 밑그림이다.

구조 개편으로 해외 흡수합병(M&A) 그리고 이를 위한 자금조달체계(Funding Source)를 구축해야 로컬 거래소에서 탈피해 글로벌 거래소로 도약할 수 있다.

소유구조 개편은 현행 회원제 조직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기준에 들어맞는 시장 혁신을 촉진하는데도 필수적이다.

회원제 아래서는 회원의 기득권 유지(안정적인 중개수익 확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회원 이익에 반하는 혁신이 곤란하다.

◇ "정치 일정상 이번 기회 놓치면 도태를 선택하는 꼴"

KRX 구조 개편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넘어가 있다.

하지만, 법안 개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여러 쟁점 때문에 법안 심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 등 국회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이번 연말 임시국회에서 자본시장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현 정부 임기 내 법안 통과는 불투명해진다.

통상적으로 총선 직전 임시국회에서는 법안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여야 잠정합의에 이른 법안 통과에 실패한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법안이 통과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 실패하면 KRX 구조 개편은 2∼3년가량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우리 시장의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지금 자본시장법 개정을 완료하더라도 지주회사 출범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지난 7월 '한국거래소 경쟁력 강화 전략'을 내놓았던 최경수 KRX 이사장은 "지금까지의 독점 거래소 이미지에서 탈피해 시장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기업으로 환골탈태하겠다.

시장간 경쟁과 끊임없는 혁신으로 벤처·모험자본시장을 육성하고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환골탈태의 시작을 알릴 자본시장법이 국회에서 진통을 겪는 지금 최 이사장은 "우리 자본시장이 해외와 경쟁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법 개정이 이뤄지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s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