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사외이사 70% 내년 3월 임기만료…"실력있는 사외이사 없나요"
“A대학의 ‘간판 교수’를 사외이사로 모시려고 의사를 타진했더니 정중하게 거절하시더라고요. 보수가 더 많고, 다른 회사 사외이사 겸직 제한도 없는 한 대기업과 이미 접촉하고 있다면서요.”(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

은행들이 새로 선임할 사외이사 후보를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권 사외이사의 약 70%가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데,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이른바 ‘A급 적임자’들은 “사외이사로 모시고 싶다”는 제안에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체나 보험·카드 등 다른 금융업권의 사외이사는 두 곳 이상의 사외이사를 맡아도 되지만 은행 사외이사는 겸직이 금지된 탓이다.

시중은행 사외이사의 연간 보수가 제조업체나 다른 금융업권보다 높은 것도 아니다. KEB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5200만~5300만원 정도이고, 농협은행은 4800만원, 우리은행은 4000만원 수준이다. 은행들이 원하는 A급 적임자들로서는 굳이 은행에서 사외이사를 맡을 매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올초 도입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라 은행 외 다른 금융회사도 내년부터 전체 사외이사의 5분의 1 이상을 매년 새로 선임해야 한다. 사외이사 수요가 늘어난 데 반해 능력을 갖춘 후보는 한정돼 금융회사들이 벌써부터 사외이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사외이사 26명 가운데 69.2%인 18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말 끝난다. 국민은행(4명)과 농협은행(5명)은 사외이사 전원의 임기가 동시에 만료된다.

그동안 은행권 사외이사는 임기가 끝나면 재추천받아 연임하는 게 관행이었다. 법제처 차장을 지낸 박세진 지구촌학교장은 신한은행에서 2011년 3월부터 5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금융회사가 매년 사외이사의 5분의 1 이상을 새로 선임해야 한다는 내용의 모범규준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모범규준은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대다수 금융회사가 지키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감시·견제 기능을 강화하고 임기를 분산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때는 모범규준 도입 직후라 예외를 적용했지만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때는 예외없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 사외이사 임기는 최장 5년이다. 은행 사외이사의 최초 임기는 2년이며, 나머지 3년은 1년 단위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연임할 수 있다. 하지만 모범규준의 ‘5분의 1 교체’ 규정을 적용하면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외이사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시중·지방·특수은행을 포함한 은행 사외이사는 총 81명이다. 여기에 보험 142명, 증권 114명 등 카드·캐피털·저축은행까지 합하면 금융권 사외이사는 총 450여명이다. 단순 계산하면 이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90명의 사외이사가 내년 3월에 교체될 전망이다.

한 은행장은 “사외이사 자격 요건이 강화돼 적합한 인물을 찾는 일이 예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며 “사외이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귀띔했다.

정일묵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모범규준에 나오는 사외이사 요건의 핵심은 금융, 경제, 경영, 회계법률 등 관련 분야에서 충분한 실무 경험이나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라며 “교수, 공무원, 전문 경영인, 법조인 등을 제외하면 다른 인력풀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