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 위기에 허덕이던 1998년. 이때만 해도 수입차 판매량은 연 2천 대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5년 올해엔 수입차 판매량이 23만 5천 대를 바라보고 있다. 100배가 넘는 판매율 신장, 그 중심에 선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아 20주년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25일 오전,서울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정재희 회장을 비롯해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부회장 그리고 윤대성 전무 외에 14개의 수입자동차 회원사, 25개 브랜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주년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정재희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한국수입자동차협회 20년 역사의 산 증인, 윤대성 전무의 브리핑이 이어졌다.윤대성 전무의 브리핑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수입차 역사를 크게 4개의 시기로 나눠 구성했다.#1. 시장 개척기(1987~1996년)수입차 개방 정책이 시행된 1987년. 연간 판매량 10대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수입차의 한국 진출은 시작됐다. 그러나 과소비 억제정책과 통상 마찰이라는 악재는 연간 1만 대 판매도 간신히 도달하게 만들었다. 1995년 1월, 통상산업부(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의인가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설립된다.#2. 수입차 시련기(1997~1999년)"저 XX놈의 자식, 어디서 수입차를 타고 다녀?"외환 위기 직후, 우리나라 국민들은 외산품 사용을 죄악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산 불매 운동 및 불신의 여론은 일상일 정도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수입차를 타고 주유소에 가면 기름을 안 넣어주는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날달걀 세례를 얻어맞기도 했다고. 이때 수입차의 연간 판매량은 1996년 1만 여대에서 2천 여대로 곤두박질치게 된다.#3. 시련 극복과 회복기(2000~2008년)잠시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수입차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어 갔고 일본 브랜드가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며 일본 차의 인기가 날로 높아졌다. 기존에 열리던 서울모터쇼와는 별개로 2000년과 2003년에는 수입차 모터쇼가 개최되기도 했다.#4. 재도약과 성장기(2009년~)"수입차도 현명한 소비가 될 수 있다"연달아 발효된 한-EU,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자동차 수입의 벽을 더욱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소비자의 인식도 과거 `수입차는 사치`라는 인식에서 `수입차도 현명한 소비`로 전환되면서 수입차의 대중화를 일궈냈다.그 결과 현재 25개의 수입 브랜드에서 505개의 모델이 팔리는 괄목상대할 만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윤 전무의 브리핑에 이어 진행된 질의 응답 세션에서는 실라키스 부회장의 폭스바겐 그룹 배기가스 스캔들과 관련해 언급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폭스바겐 사태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 디젤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측정방법과 표준화 문제를 어떻게 안고 가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디젤자체는 좋은 기술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실라키스 부회장은 이어서"회사 문제를 떠나 업계가 변할 수 있도록 표준 테스트의 틀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험실 측정 기준을 도로주행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한편, 윤 전무는 내년 수입차 판매량 전망치 25만 5천 대의 근거에 대해서 "내년에는 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질적향상과 내실을 위해 다소 보수적이더라도 한자리수의 성장률이 적당할 것이라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김민겸기자 press@maxim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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