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C 산출때 지급여력 감소
한화생명 15%P·삼성생명 8%P↓
삼성 한화 등 대형 생명보험회사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보험사의 대표적 재무건전성 지표인 ‘위험기준지급여력(RBC)’ 비율을 최대 15%포인트 정도 끌어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RBC 비율 산출 때 자사주가 자기자본에서 차감돼 지급여력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2020년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강화하는 국제회계기준(IFRS) 개편으로 보험사의 자기자본 급감과 RBC 비율 폭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지급여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생명보험사의 자사주 매입이 적정한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달 29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6513만여주(약 7.5%), 5202억원의 자사주를 취득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던 한화생명 주식 22.8%가 지난달 19일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자 한화생명이 이 가운데 7.5%를 사들인 것.
회사 관계자는 “잠재매물 일부를 줄여 주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자사주를 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한화생명의 RBC 비율은 투자 포트폴리오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약 1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신용평가업계는 예상했다. 자사주는 RBC 산출 때 자기자본에서 차감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이 자사주 취득액만큼 줄어들면 RBC 산출 때 분자에 들어가는 지급여력금액도 같은 금액만큼 감소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에 따르면 한화생명의 지급여력금액은 지난 6월 말 현재 9조9390억원에 달했지만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9조4000억원대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달 2일부터 내년 1월29일까지 자사주를 매입하는 삼성생명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은 ‘주가 부양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이 기간 중 총 650만주, 7085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할 예정이다. 삼성생명은 자사주 매입이 끝나는 내년 1월 말에 RBC 비율이 8%포인트 떨어지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 생보사들의 이번 자사주 매입을 놓고 신용평가업계와 IB업계에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강화하는 새로운 회계 기준인 ‘IFRS4 2단계’의 2020년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생보사가 재무전략을 거꾸로 가동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보험연구원은 2013년 기준 IFRS4 2단계 도입 후 국내 생보사 가용자본(보험금 지급 때 사용 가능한 돈)이 58조원에서 23조원으로 60% 급감하고 RBC비율도 평균 286%에서 115%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IFRS4 2단계 도입을 앞둔 상황에서 대형 생보사들이 주가관리를 이유로 어지간한 중소형사의 전체 자기자본보다 큰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대형 생보사의 RBC 비율은 300% 안팎 수준인 만큼 이번 자사주 매입으로 인한 RBC 하락 효과는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