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토(京都)나 나라(奈良)의 사원에 가서, 고풍스럽게 어둑어둑한, 그러면서도 깨끗이 청소된 변소로 안내될 때마다 정말로 일본 건축의 고마움을 느낀다. 다실도 좋기는 하지만, 일본의 변소는 참으로 정신이 편안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본의 탐미주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는 1933년 발표한 《음예예찬》에서 일본식 변소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어둑어둑한 변소에 쪼그리고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정원을 감상하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운치라고 극찬했다. 과학자와 건축가들은 최근 이처럼 공간이 실제 인간의 뇌 인지작용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을 연구하는 신경건축학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예전에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정서를 표현할 길이 문학작품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뇌의 활동을 포착하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과 뇌전도검사기(EEG)가 대체하고 있다.

○솔크연구소 천장이 높은 이유

신경건축학은 말 그대로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건축학(architecture)을 합친 말이다. 사람이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정량적으로 측정해 뇌가 행복하다고 반응하는 건축이나 공간을 파악한다.

신경건축학은 소아마비 백신 연구에서 유래했다. 1950년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솔크 피츠버그대 교수는 수년간 연구에 매진했지만 좀처럼 백신 개발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날 연구실을 나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한 오래된 성당에서 불현듯 백신 개발의 실마리를 풀 아이디어를 얻었다.

솔크 교수는 훗날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생명과학연구소를 지으면서 최고 건축가인 루이스 칸 예일대 교수에게 설계를 부탁했다. 오래된 성당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른 점에 착안해 “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 천장 높이인 2.4~2.7m보다 높은 3m로 설계해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2008년 조앤 메이어스 레비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는 천장 높이가 인간의 창의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천장 높이가 각각 2.4m, 2.7m, 3m인 세 건물에서 참가자들에게 창의적인 문제를 풀게 했더니 높이가 3m인 방에서 문제를 풀 때 두 배 이상 잘 풀었다. 이보다 낮은 2.4m 높이에선 창의력보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연산문제를 더 잘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 줄이는 옥시토신 공간

신경건축학은 2003년 미국에서 ‘건축을 위한 신경과학 아카데미’가 결성된 이후 활기를 띠고 있다. 방 벽지 색상에 따라 사람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은 빨간색은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고, 파란색은 창의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외로움에 따른 고립감을 줄이는 방안으로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과도 있다.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감이 형성될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분비를 촉진하려면 실내 마감재에 부드러운 재료를 쓰거나 방에 햇빛을 충분히 끌어들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신경건축학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어린이나 정신질환 환자처럼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병원과 요양시설에 도입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경과학자와 건축 전문가 등이 2011년 신경건축학연구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하반기 건축학회에 발표된 논문 213편 중 50편이 신경과학과 일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신경건축 분야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구 결과가 많지 않다”면서도 “행복한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사람을 헤아리는 건축의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