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도 않은 주먹구구식 구매로 불량장비 고가매입
감사원, 해군전력 증강사업 추진실태 감사결과 공개
1억7천만원짜리 140배 이상 비싼 240억원에 구매하는 일도
"소해함 전력화 시기가 3년 이상 지연 불가피"


방위사업청이 미국 영세 군수업체로부터 소해함의 기뢰 제거 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성능 미달 장비를 고가에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계약 과정에 미리 지급한 선금에 대한 보증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계약을 해지해 5천500만 달러(약 637억원)를 떼일 위기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29일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해군전력 증강사업 추진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소해함(700t급)은 주요 항만과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바다의 지뢰'인 기뢰를 제거하는 함정으로, 기뢰탐지를 위한 음파탐지기와 기뢰제거 장비가 핵심장비로 탑재된다.

◇불량 소해장비 고가에 구입한 방사청 = 방사청은 미국 업체와 4천500만 달러를 주고 복합식 소해장비 구매 계약을, 2천500만 달러를 주고 기계식 소해장비 구매 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복합식 소해장비는 음향이나 자기장을 이용해 기뢰를 제거하는 장비이고, 기계식 소해장비는 줄을 끊어 기뢰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뒤 기뢰를 제거하는 장비다.

방사청은 특히 기계식 소해장비를 납품받는 과정에 가격이 적절한지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아 이 장비를 정상가보다 1천만 달러(약 118억원) 이상 고가로 구매했다.

게다가 이 업체는 소해 장비를 제작할 능력이 없는데도 마치 자사가 제작업체인 것처럼 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한 뒤 다른 업체가 제작한 장비를 납품했다.

그렇지만 이 업체가 납품한 장비의 경우 소음 수준 등이 성능 기준에 미달했고, 일부 장비(소해 케이블)는 제조사와 제조국마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방사청은 또 다른 미국 업체와 5천490만 달러를 주고 바닷속 물체를 탐지하는 장비의 일종인 가변 심도 음탐기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 업체가 납품한 가변 심도 음탐기 역시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은 성능 미달 제품이었다.

이 과정에 방사청은 납품 검사도 하지 않은 채 대금을 지급하거나 시험 성적서도 없이 납품을 인정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수차례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제작 현장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청은 특히 15만6천달러(약 1억7천만원) 상당의 장비 매뉴얼이나 기술자료를 무려 140배 이상 비싼 2천128만 달러(약 240억원)를 주고 구매하기도 했다.

결국 방사청은 이들 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는데, 계약 과정에서 미리 지급한 7천253만 달러 가운데 5천576만 달러(약 637억원)에 대해 보증서를 작성하지 않아 이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들 업체는 지난 2010년 매출액이 각각 441만 달러와 544만 달러에 불과한 영세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계약 과정에서의 각종 문제와 불량 장비 납품 등으로 소해함 전력화 시기가 3년 이상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방위사업청장에게 담당 직원 1명에 대해 징계할 것을 요구했고, 3명에 대해선 인사자료로 통보했다.

◇시험성적서 확인도 하지 않고 전술항공항법장비(TACAN) 구매 = 방사청은 차기호위함과 차기상륙함에 탑재하기 위해 미국 업체와 TACAN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TACAN은 함정에 탑재되어 함정의 방위, 거리 등 항법정보를 항공기에 제공하는 장비다.

그렇지만 방사청은 계약 업체가 TACAN의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지 않아 장비의 성능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TACAN을 납품받아 차기호위함과 차기상륙함에 탑재했다.

심지어 이 업체가 최대 41개월 늦게 제출한 시험성적서는 계약 장비가 아닌 다른 장비에 대한 성적서이거나 시험평가기관이 확인되지 않은 '불량 성적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방사청은 한 국내 업체로부터 해군의 전방함대 주력 전투함인 유도탄고속함의 디젤엔진을 납품받으면서 비정상적인 진동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