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먼지가 보이는 아침 - 김소연(1967~)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시집《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 中


먼지가 보이는 아침에는 창을 밀고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가 보입니다. 햇빛의 각이 조용히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내고 있습니다. 잊고 지냈던 일들, 잊혀졌던 일들이 먼지처럼 되살아납니다.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순도 높은 조용함과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몸의 감각이 숨구멍을 열어놓는 순간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사실 먼지는 우리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닙니다. 먼지는 매 순간 사물을 다르게 보게 하고 다르게 살아보게 하는 마법사 같습니다.

이소연 시인(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