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면 마르는 섬유, 태양광 발열 섬유…
세계 일류기업 기술 파트너 '빗장' 풀어
인비스타에 수출…유니클로 등도 러브콜

지난달 10일 독일 본사에서 찾아온 아디다스의 기술담당 임원 일행은 이렇게 사정했다. 물기 먹은 원단이 눈 깜짝할 사이 바짝 마르는 실험 장면을 본 직후였다. 1주일 뒤 아디다스는 직원 수 60여명의 국내 중소기업 벤텍스에 서류 봉투를 하나 보냈다. ‘글로벌 기술파트너’가 돼달라는 내용이었다. 통상 3년 이상의 협의 기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아디다스와의 기술 파트너 ‘빗장’이 1주일 만에 풀린 것이다. 벤텍스는 지난해 말 나이키와도 기술파트너 협약을 맺었다.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을 주도하는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경쟁이라도 하듯 벤텍스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가 뭘까. 기능성 원단 소재를 개발, 생산하는 벤텍스는 전체 직원의 25% 이상이 연구인력인 회사다. 토종 기술력으로 72건의 특허와 266건의 기술 상표 등록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선 “기술력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을 만큼 ‘한칼’을 지닌 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벤텍스는 지난달 듀폰으로부터 섬유화학 부문을 인수한 인비스타와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일부 소재는 원재료 상태로 수출하고 완제품 매출의 8%를 러닝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다국적 합성섬유 기업 인비스타와 러닝로열티 계약을 맺은 것은 아시아권 기업으론 처음이다. 소재 수출과 로열티 수입 등이 본격화하는 내년엔 매출이 6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벤텍스는 보고 있다.

벤텍스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고경찬 대표(55·사진)다. 학창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고 대표는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재학 시절, 방학 때마다 전통시장과 터미널 등을 돌며 양말과 핸드백을 팔았다. 그 시절 별명이 ‘공부하는 장사꾼’이었다. 지금도 그는 경영과 연구, 글로벌 세일즈를 넘나들며 ‘1인 3역’을 감당하고 있다. 벤텍스의 핵심 기술인 드라이존은 그가 대학 시절 거리를 헤매며 꿈꿨던 상상 속 기술을 구현하려고 애쓴 결과물이다.
고 대표가 최근 집중하는 분야는 피부과학이다. 그는 “기능성 섬유시장은 덥거나 춥거나 열악한 상황에서 내 몸의 항상성을 유지해주고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어서 스포츠·레저산업과의 접점이 크다”며 “피부과학을 제대로 알아야 앞선 기술력을 유지하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엔 중앙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지난 3년간 섬유구조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인체에 유익한 섬유개발에 매진해온 결과다.
고 대표는 “건강한 삶을 중시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의료와 헬스, 힐링 등 융합시장과의 접목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원단 소재 이외에도 생활밀착형 틈새 기술을 찾아 도전한다면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토종 스포츠 기술기업이 반드시 주목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사·국민체육진흥공단 공동기획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