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왕국' 폭스바겐
‘1800만유로(약 238억원).’

세계 자동차제조업체 및 관련단체들이 지난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며 쓴 돈이다. EU 집행위원회가 결정하는 배출가스 검사 기준 등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시행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다.

가장 많은 로비자금과 로비스트를 활용한 것은 독일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43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해 330만유로(약 43억원)를 뿌렸다. EU 산하 투명성 등록처의 자료를 근거로 로비감시 전문 사이트 ‘로비팩트’가 공개한 수치다.

로비팩트에 따르면 로비에 돈을 많이 쓴 상위 5개 자동차회사는 폭스바겐을 비롯해 다임러, 독일자동차공업협회(VDA),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BMW였다. 이들은 지난해 8명에서 31명의 로비스트를 각각 고용해 158만~250만유로를 썼다. 폭스바겐과 다임러, BMW는 모두 VDA와 ACEA의 주요 회원사다. 사실상 독일 회사들이 EU의 로비를 주도한 것이다.

특히 2013년 4명의 로비스트를 썼던 폭스바겐은 지난해 10배가 넘는 43명을 고용해 집중적인 로비활동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국제시민단체인 ‘유럽기업감시’는 “로비팩트의 자료는 자동차업계에서 제공한 수치를 취합한 것으로, 실제로는 훨씬 많은 로비스트와 자금이 투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자동차업계의 로비활동은 EU가 이산화탄소 등 배출가스에 대한 규제에 적극 나서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 보도했다. NYT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회의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에 대한 기준과 관련해 이미 회원국 간 결론이 나 있던 협정을 뒤집어 2021년으로 늦추자고 주장해 관철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폭스바겐의 오점으로 메르켈이 ‘광택(luster)’을 다소 잃었다”고 꼬집었다.

독일 정치지도자들과 자동차산업 간 ‘정경유착’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NYT에 따르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비롯해 10대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푸, 독일 현 부총리 겸 경제장관인 지그마어 가브리엘 등이 폭스바겐 경영감독위원회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다.

NYT는 “시장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의 리더와 자동차산업 간 ‘지나치게 유착한(too cozy)’ 관계가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