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은 1945년 설립 이래 윤영환 명예회장의 ‘의약보국(醫藥報國·의약으로 국가를 돕는다)’ 신념을 바탕으로 국내 제약·건강업계를 견인하는 대표적 ‘토털 헬스케어 그룹’으로 발전했다. 대웅제약의 모체는 부산의 작은 약국이었다. 윤 명예회장은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하고 부산 수정동 경남여고 인근에 선화약국을 열었다. 선화약국은 윤 명예회장의 전문성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도약의 발판은 1966년에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문수 대한비타민사 사장이 경영난에 빠진 자신의 회사를 인수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윤 명예회장은 고민 끝에 1억2000만원에 대한비타민사를 인수했다. 기업인으로 변신한 윤 명예회장은 정도경영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회사에 뿌리내린 고질적인 병폐와 부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원료가 들어올 때부터 영업사원들의 판매기술까지 모든 과정에서 편법을 없앴다. 결과는 매출 급성장이었다. 회사 매출이 매년 60%씩 늘었다.

1969년 싸이클라메이트 파동은 윤 명예회장의 정도경영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당시 대부분의 드링크음료 제조업체들이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인 싸이클라메이트를 사용했는데 싸이클라메이트가 발암물질로 판명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하지만 대한비타민사는 ‘아스파라S 드링크’에 이 성분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의 기업으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사업이 꾸준히 커지면서 윤 명예회장은 판로를 서울로 확장했다. 1972년 9월 성남 공장을 지었고 1974년에는 부설 제약연구소도 설립했다. 독자적인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일반의약품 중심의 제품 구조를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곰 쓸개 기반의 간장약 ‘우루사’가 전 국민의 뇌리에 남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대한비타민사는 1961년부터 우루사 정제형을 판매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웅담의 쓴맛이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됐다. 윤 명예회장은 1974년 캡슐형 우루사를 내놨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출시 첫해인 1974년 1억원의 판매실적을 올렸고 1990년에는 매출 200억원을 달성했다. 우루사의 성공으로 대웅제약은 1980년대 중반 10위권 제약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루사로 큰 성공을 거둔 윤 명예회장은 1978년 2월, 대한비타민사의 ‘대’자와 우루사에서 영감을 받은 ‘웅’자를 조합해 대웅제약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윤 명예회장은 장학사업과 근로복지사업 확대에 쓰겠다며 7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윤 명예회장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회사의 목표를 글로벌 헬스케어 그룹으로 삼았고 해외시장 진출에 속도를 올려 2020년에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