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길 예정이지만 국회에선 국가재정을 지방자치단체가 끌어다 쓸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남발되고 있다. 국가재정 지원을 법으로 강제하는 도청이전 특별법과 도로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출 증가를 유발하는 법을 입안할 경우 대안까지 마련하도록 의무화하는 ‘페이고 원칙’에 정면배치되는 ‘반(反)페이고’ 법안들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랏빚, GDP의 40%선 위협하는데…도청이전 비용 혈세로 메우라는 국회
23일 국회에 따르면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같은 당 의원 14명과 함께 도청이전법 개정안을 최근 또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가가 매입한 도청 부지를 관할 지자체에 무상으로 양도하거나 장기 대부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국유재산법 개정안도 동시에 발의했다.

도청이전법은 충남도청과 경북도청 이전이 가시화됐던 2008년 제정된 법안이다. 국비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중앙정부는 충남도청과 경북도청 신축과 진입도로 건설에 5200억원가량의 국비를 지원했다. 충남도청은 대전에서 홍성으로 이전을 완료했고, 경북도청은 내년 2월 대구에서 안동·예천으로 옮길 예정이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도청 이전으로 남은 종전 부지 처리를 놓고 국가가 추가로 지원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이미 지난해 말 여야는 국가가 도청을 이전하면서 남은 기존 부지를 매입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정부는 경북도청의 대구 부지와 충남도청이 있던 대전 부지를 매입하는 데 약 25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권 의원 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가가 매입한 부지를 지자체에 무상으로 양도하라는 법안을 이번에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통과된 법안에 따라 종전 도청 부지를 매입한 뒤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검토하려던 참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종전 도청 부지를 국유재산으로 매입하고서 지자체에 헌납하라는 것은 관련 예산을 통째로 내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번 도청이전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15명 의원의 지역구를 보면 대구 6명, 경북 5명, 대전 3명이다. 비례대표 의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 지역구 의원이다.

도로법 개정안도 줄기차게 발의되고 있다. 현재 ‘대도시권 교통혼잡도로 개선사업’에 국비를 지원하고 있으나, 도로법에선 사업대상을 광역시로 제한하고 있다. 의원들은 국비 지원 대상을 확대하라는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0명은 교통혼잡도로 선정 대상을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두 달 전 내놓았다. 지난 4월 같은 당의 최규성 의원 등도 광역시에서 75개 일반시로 확대하라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 경우 국비 재정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9063억원, 7년간 총 5조5773억원이 소요될 것이란 비용추계서도 첨부했다.

민간 연구기관 연구원은 “지자체에서 국가 예산 따내기가 갈수록 쉽지 않게 되자 총선을 앞두고 국가 재정을 노린 의원입법이 줄을 잇고 있다”며 “국가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온 만큼 페이고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