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 선진국 뉴질랜드의 최대 유업체인 폰테라는 올 하반기부터 낙농가로부터 공급받는 원유 가격을 ㎏당 5.25달러에서 3.85달러로 26.7% 내렸다. 폰테라 측은 “우유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에 따른 유제품의 국제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수매 가격을 인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우유 L당 소비자 가격은 최근 1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같은 부피의 물(1.5달러)보다 싼 가격이다.

반면 국내 우유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지난 7월 낙농진흥회는 올해 국내 원유 수취 가격을 L당 1088원으로 동결했다. 소비자 가격도 2000~3000원 선으로 유럽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세계적인 우유 공급 과잉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유업체들이 구조조정과 가격인하에 나서고 있는 반면 국내 유업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수요와 공급 논리가 무시된 원유가격연동제 때문에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 유업체들의 설명이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전년도 원유 가격에 생산비 증감분과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가격 결정의 중요한 한 축인 수요 변동은 무시한 채 공급 요인만 반영하는 구조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떨어져 자연스럽게 공급량과 가격이 감소해야 하지만 공급가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시장 원리가 작용하지 않는다”며 “높은 원가 부담과 수요 감소가 겹치면서 유업체들의 실적이 일제히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유업은 영업이익이 전년 상반기 151억원에서 86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회사 관계자는 “초콜릿 등의 이익으로 우유 부문의 적자를 상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올해 흰우유 부문에서 창사 이래 최대인 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 33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업계 1위 서울우유는 올 상반기 51억원을 버는 데 그쳤다. 빙그레는 매출과 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부산 지역 유업체 비락은 낙농진흥회에 “우유 조달량을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유업체들은 당장의 실적 부진보다도 현 가격 구조에서는 개선책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한 우유회사 사장은 “남는 원유를 치즈 등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외국산 원료와 국산 원료 간 가격 차이를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당 4990원 정도에 불과한 외국산 원료 대신 세 배가량 비싼 1만4790원 선인 국산 원료를 사용하면 팔수록 손해만 보는 구조”라며 “그래도 국산 원료를 고집해야 한다면 그건 업무상 배임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연동제에 따라 높은 가격 수준이 유지되면 유제품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계 대형마트 코스트코는 자체상표(PB)인 커클랜드 우유를 수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유통기한과 운송비를 고려해도 더 싸게 우유를 팔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원유 가격 인하나 수급량 조절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16일 오후 낙농진흥회 회의실에서 원유 수급조정회의가 열렸지만 생산량 감축을 반대하는 농가 측 대표자들의 전원 퇴장으로 파행을 빚었다.

정수용 한국유가공협회 회장은 “경영난을 걱정하는 농가 입장은 이해하지만 자칫 우유산업 전체가 무너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