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영 보나베띠 공덕역점 대표가 레스토랑의 와인 진열대 앞에서 두 손 가득 코르크 마개를 들고 서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규영 보나베띠 공덕역점 대표가 레스토랑의 와인 진열대 앞에서 두 손 가득 코르크 마개를 들고 서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술을 못 마셔도 와인을 즐길 수 있어요. 와인은 ‘마시는 것’이 아니랍니다.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최근 서울 도화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베띠 공덕역점에서 신규영 대표(56·사진)를 만났다. 재킷에 V넥 셔츠를 받쳐 입고, 머리에 멋지게 ‘힘을 준’ 그의 모습은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신 대표는 32년간 금융맨으로 살다가 퇴직한 뒤 와인 전문가 겸 레스토랑 경영자로 변신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그는 “국내에서 와인이 대중화한 지 몇 년 됐지만 아직도 와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너무나 많다”며 자신을 ‘도와사(導와士)’라고 소개했다. 선박을 안전하게 수로로 이끄는 도선사(導船士)처럼 사람들을 와인의 세계로 인도하며 소중한 인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와인의 핵심은 사람이에요. 재빨리 ‘원샷’하는 술이 아니에요. 잔을 부딪치며 건배할 때도 항상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죠. 와인과 관련된 모든 예절은 배려에서 출발해요. 만일 상대방이 와인에 별 관심이 없다면 와인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진짜 와인 전문가입니다. 진정한 와인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엔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문전박대 안 당하려 시작한 와인 공부

[人사이드 人터뷰] 와인바에 카드 영업 다니다 와인 소믈리에로 변신
신 대표가 와인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조흥은행 카드사업부에서 ‘와인신용카드’를 만들 때였다. 와인 전문점과 레스토랑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할인 혜택을 준다는 콘셉트의 카드였다. “흔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가 되면 테니스를 치는 게 보편화되고, 2만달러로 올라서면 와인 소비가 대중화하고, 4만달러에 들어서면 요트를 탄다고 해요. 제가 처음 와인을 접할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1만6000여달러였고,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와인 소비가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그때만 해도 저에게 와인은 미지의 세계였어요.”

카드 거래 계약을 맺을 가맹점을 찾기 위해 당시 강남 유명 와인바의 문을 두드렸다. 가는 곳마다 외면당했다. 처음엔 분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왜 문전박대당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어요. 와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와인을 아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언어를 몰랐던 거죠. 영업에 성공하려면 ‘고객의 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와인신용카드 영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술이라면 맥주와 소주밖에 모르던 신 대표는 와인 애호가인 회사 선배에게 “와인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매달렸다. 선배는 그를 데리고 단골 와인전문점으로 가서 와인셀러를 열어달라 청한 뒤 “이 중에서 10가지 와인을 아무거나 선택해서 시음해 보라”고 권했다. 와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어떻게 10개의 와인에서 전부 다른 맛이 나는지. 그 와인들 이름이 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열 가지 색으로 빛나던 그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그 길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와인 공부를 하며 수백만원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은행원이 무슨 소믈리에 공부냐”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마케팅 성공만을 생각했다. 와인바에 카드영업을 다니면서 와인 코르크마개를 딸 때 사용하는 스크루도 관련 업계에서 명품으로 통하는 샤토 라기올 제품을 들고 다녔다. 소믈리에인 와인바 사장들이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맹점 50여곳을 모았다.

삶의 두 터닝 포인트, 소믈리에와 헤드헌터

[人사이드 人터뷰] 와인바에 카드 영업 다니다 와인 소믈리에로 변신
업무 때문에 알게 된 와인의 세계는 신 대표를 점점 매혹시켰다. 진정으로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테니스와 더불어 그의 취미가 됐다. 2005년 1월엔 오지엠연구원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했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과 통합한 뒤 2006년 신한카드 강남영업추진센터 지점장이 됐다. 사무실 한쪽을 와인바로 꾸며 카드사용액 1억원 이상 고객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VIP마케팅에 활용했다. “와인에 항산화물질이 많은 건 아시죠? 그런데 그 항산화물질이 체내에 오래 남아있지 않아요. 그래서 와인 애호가들은 건강을 위해 하루 한 잔씩 와인을 꼭 챙겨 마셔요. VIP 고객이 언제든 지점을 찾아와 와인 한 잔씩 마실 수 있도록 꾸며놓았죠.”

신 대표의 인생에서 소믈리에가 첫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면, 두 번째 터닝 포인트는 2003년 12월 한경닷컴 헤드헌터 입문과정을 수료한 것이다. 경력직 채용 시 헤드헌팅사를 통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간중간 어려움을 많이 겪다가 우연히 강의 개설 안내문을 보고 수강신청을 했다. 신 대표는 “헤드헌터 관련 교육을 받으면서 인재를 고르는 안목도 배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교훈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이력서를 헤드헌터에게 내놓는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어요. 1979년 덕수상고 졸업과 조흥은행 입사, 딱 두 줄뿐인 이력서가 너무나 초라하게 보였어요. ‘6개월마다 이력서에 한 줄씩 추가해야 한다’고 배운 게 그때였습니다.”

신 대표는 마흔다섯 살에 서울디지털대에 입학하고, 마흔여덟 살에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MBA) 석사과정을 밟으며 쉰 살까지 5년 동안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최근엔 평생교육사와 레크리에이션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지난 2월부터는 명리학도 공부하고 있다.

와인은 편안한 인연의 매개체

신 대표는 2010년 12월 말 신한카드에서 명예퇴직했다. 퇴직 후 2011년 5월 지금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결정엔 망설임이 없었다. “제가 아는 게 은행과 카드업무 말고는 와인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연한 선택을 한 것이죠. 퇴직금과 저축한 돈을 모았어요. 개업 후 2년 정도는 많이 힘들었어요. 자영업은 결코 화려한 일이 아니에요.”

그는 “그래도 4년간 이 일을 하며 버틸 수 있는 건 와인에 대한 지식과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와인 관련 강의를 1000회 넘게 했고, 한 달에 한 번 와인아카데미를 연다. 그가 이끄는 와인동호회만 20개에 달한다.

신 대표가 생각하는 와인이란 무엇일까. 그는 “편안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와인은 편하게 즐기는 게 제일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딱딱하게 들어가서 와인 때문에 긴장되고, 사람 간의 관계가 서먹해진다면 그건 와인을 잘못 배운 것입니다.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와인도 아니고, 복잡한 와인 이름이나 빈티지를 외운다고 해서 와인을 많이 아는 게 아니에요. 와인의 향을 즐기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초고령화 사회가 돼 ‘120세 시대’란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지금, 신 대표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평생직장의 개념은 없어요. 나 또한 그랬고요. 주위 시선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평생 가장 잘하고 좋아할 일을 빨리 찾으세요. 그것이 인생을 바꾸는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

와인 소믈리에 되려면

포도 품종·원산지·맛 특징 등 와인 관련 지식 꿰뚫고 있어야


소믈리에는 와인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서비스하는 직업 및 종사자를 가리킨다. 중세 유럽에서 식품보관을 담당하는 솜(somme)이라는 직책에서 유래했다. 영어로는 와인캡틴(wine captain) 또는 와인웨이터(wine waiter)라고 한다.

소믈리에가 정식 직업으로 정착한 시기는 18세기 말이다. 왕과 귀족의 음식 안전과 메뉴 관리를 책임지던 사람들이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흩어지면서 와인을 즐기는 문화와 예절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소믈리에는 포도의 품종과 원산지, 수확연도와 맛의 특징 등 와인 관련 지식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미각을 잃지 않기 위해 금연하고 운동하는 등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소믈리에의 복장은 정해져 있다. 검정 상·하의를 입고, 안에는 흰색 셔츠와 조끼를 착용한다. 넥타이를 매고 앞치마를 두른다. 조끼 주머니엔 와인병을 따는 스크루와 성냥을 넣어둔다. 와인을 시음할 때 쓰는 잔인 타스트뱅을 목에 건다.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선 보통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와인 전문점 또는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는다. 최근엔 한국호텔관광실용전문학교를 비롯한 직업전문학교를 중심으로 와인소믈리에과가 느는 추세다. 소믈리에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은 없으며, 민간 자격증이 수십개에 달한다.

국내에선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와 한국와인아카데미협의회 등에서 자격증을 발급한다. 해외에선 국제소믈리에협회(ASI)와 프랑스 보르도와인협회(CIVB), 영국 와인마스터협회 등에서 주는 자격증이 유명하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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