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켠 K브러더스…"우리도 女처럼"
아시아와 유럽 프로골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백석현(25)의 별명은 ‘빅맨’이다. 키 180㎝, 몸무게 108㎏의 거구에서 뿜어 나오는 330야드 장타가 특기다. 그러면서도 스윙은 부드럽다. 그 매력에 흠뻑 빠진 해외 열성팬들이 애칭을 붙여줬다.

허석호
허석호
하지만 국내 골프계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다. 우승 소식을 한 번도 들려주지 못한 탓이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1승을 합작한 여자골프와 유러피언 투어 메이저 대회인 BMW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안병훈(24)의 그늘도 컸다. “존재감을 키우려면 우승밖에 없다. 스윙을 바꿔서라도 뜻을 이루겠다”고 그는 늘 말해왔다.

백석현이 제대로 이름을 각인시킬 기회를 잡았다. 24일 스위스 크란스 몬타나의 크란스서시어GC(파70·6848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투어 오메가유러피언마스터스 대회에서다.

백석현은 대회 이틀째인 이날 7언더파 63타를 쳤다. 첫날 5타를 줄인 그는 중간합계 12언더파로 이날 오후 10시 현재 선두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유러피언 투어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백석현은 보기 없이 버디 5개와 이글 1개를 잡아내는 무결점 경기를 펼쳐 2위그룹인 킨헐트 마르쿠스(스웨덴)와 대니 윌렛(영국) 등을 3타 차로 따돌리고 첫 승 기대감을 높였다.

백석현은 전날 열린 1라운드에서도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잡아내 남은 경기에서의 선전을 기대케 했다. 프로 데뷔 8년차인 백석현은 아직까지 우승 기록이 없다. 그는 “몸무게를 빼느라 스윙이 망가졌는데, 이번에 새로운 스윙을 거의 완성했다. 몸무게에 신경쓰지 않겠다”며 첫 승 각오를 다졌다.

백석현과 함께 전날 공동 3위를 기록했던 ‘바람의 아들’ 양용은(43)이 이날도 백석현과 똑같이 7타를 줄여 공동선두에 이름을 올렸다. LPGA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유러피언 투어나 미국프로골프(PGA)에서 한국 선수가 한 라운드에서 동시에 선두로 치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2라운드가 남아 있긴 하지만 K브러더스가 유러피언 대회에서 동시에 선두권에 오른 것은 ‘5월의 데자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양용은은 지난 5월 후배 안병훈이 우승한 BMW PGA챔피언십 1라운드에서도 3위에 오르며 마라톤에서 우승 주자의 레이스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다. 고덕호 프로(SBS 해설위원)는 “경쟁관계가 아닌 친한 동료 선수가 좋은 경기를 펼치거나 우승하면 심리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파의 선전은 침체된 국내 프로투어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PGA에서는 ‘영건’ 노승열(24·나이키골프)이 대표주자다. 지난달 페덱스세인트주드클래식에서 3위에 올랐던 노승열은 RBC캐나다오픈 첫날 4언더파 68타를 쳐 제이슨 데이(호주), 버바 왓슨(미국), 짐 퓨릭(미국) 등 강호들과 함께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17위에 올랐다. K브러더스의 맏형 최경주(45·SK텔레콤)도 3언더파 69타로 공동 33위라는 나쁘지 않은 1라운드 성적을 냈다. 군 입대를 결정한 배상문(29)은 1오버파 73타를 치며 109위로 부진했다.

올 시즌 PGA에 뛰어든 루키 김민휘(23)도 지난주 바바솔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오르며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2라운드에서는 공동 1위까지 뛰어오르며 자신감을 회복한 만큼 남은 대회에서 첫 승을 꼭 따내겠다는 각오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열린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던롭스릭슨후쿠시마오픈에서도 이날 모처럼 노장 허석호(43)가 2라운드 중간합계 11언더파를 쳐 단독선두를 달렸다. 일본 프로투어 8승을 기록 중인 허석호는 2008년 렉서스챔피언십 우승 이후 7년 만에 우승컵을 노릴 수 있게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