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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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입시교육이 날 키웠다
정해진 시간에 완성하는 법 익숙
이탈리아 적응 빨랐던 비결

자동차→패션 디자이너 변신
패션업계 역동성에 희열 느껴
D&G 거친 후 발리로 스카우트
“벤 애플렉도 제가 만든 신발 신었죠”

이름 내건 브랜드로 새로운 도전
생활용품·인테리어로 영역 확장
“카림 라시드 같은 디자이너 될 것”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동양인이라고 차별당한 적은 없습니다. 철저히 실력 중심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디자인을 보여주니 오히려 쉽게 인정해주더군요. 능력 있는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의 도전을 권합니다.”

보수적인 유럽 패션계에서 승승장구하며 2013년 동양인 최초로 발리 신발부문 수석디자이너가 된 석용배 디자이너(42·사진)의 말엔 막힘이 없고 자신감이 넘쳤다. 이탈리아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석 디자이너는 27세 청년시절 디자인에 대한 스스로의 열정을 믿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로부터 불과 10여년 뒤 그는 발리 D&G 등 글로벌 명품회사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1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새 브랜드 출시를 앞둔 석 디자이너를 서울 문래동 GS홈쇼핑 본사에서 만났다.

자동차에 끌려 20대 후반에 무작정 이탈리아로

석 디자이너는 어린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컸다. 어머니는 조각가였고, 두 살 터울의 누나도 미술을 전공해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친구들이 교과공부를 할 때 그는 어머니 방에서 미술 서적을, 누나 방에서 패션잡지를 읽었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꿈이 커졌다.

가장 매력을 느낀 분야는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조각품 같으면서도, 사람이 타서 완전한 일체가 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초기 현대자동차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같은 디자이너가 돼 오래 기억되는 차를 남기고 싶더군요.”

한성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이탈리아 유학을 꿈꿨다. 이탈리아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개성 있는 자체 디자인으로 유명한 자동차들의 탄생지다. 문제는 나이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 졸업할 무렵 그는 이미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주변에선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시기적으로 늦었다’며 국내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석 디자이너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짐을 쌌다. “기왕 발을 들였으니 자동차 디자인의 본토에서 배우고 인정받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한국식 교육으로 쌓은 기본기 덕에 빠르게 적응

석 디자이너는 세계 디자이너 지망생이 모여든 이탈리아 에우로페오(IED)에서의 생활이 “염려한 만큼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탈리아어에 깜깜해 답답했지만, 디자인 용어와 틈틈이 익힌 ‘생활 영어’를 동원하니 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난한 현지 적응이 끝나자 그의 디자인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반에서도 구경 올 정도로 금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빨리 두각을 드러내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그는 한국식 미술교육을 꼽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입시 교육을 거친 덕분에 새 디자인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 이 바닥의 일이 처음부터 낯설지 않더군요. 한국 교육이 창의성을 떨어뜨린다고들 하지만 기본기를 단단히 해주는 건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졸업 후 필인파리나에서 스포츠카 페라리 디자이너로 일하던 2002년, 휠라에서 패션디자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휠라페라리 컬렉션을 계획 중인데,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차 디자인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다는 얘기였다.

패션에도 늘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 접한 패션업계는 역동적이고 신나는 곳이었다. “자동차는 디자인이 제품으로 나올 때까지 4년 넘게 걸리지만, 패션은 6개월이면 되더군요. 내 손을 떠난 지 반 년도 안 된 디자인의 옷을 길을 가다 발견하면 큰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밤샘 다반사…명품업계 근무환경 ‘제3세계 노동자급’

[人사이드 人터뷰] 발리 수석디자이너 석용배 "이탈리아어 한마디 못했지만 실력 하나로 명품 브랜드 입성"
컬렉션을 마무리한 뒤 휠라로 이직하며 패션업계에 정식으로 발을 담게 됐다. 스포츠회사 카파 등을 거쳐 2008년에는 글로벌 명품브랜드 D&G로 옮겼다. 높은 연봉, 전용아파트, 자동차 지원이 뒤따랐다.

뿌듯함은 잠시였다. D&G의 설립자이자 대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도메니코 돌체는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았다. 잠옷을 입은 채 소파에 기대앉아 “이번 쇼는 시칠리아 지방의 장례식을 주제로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식이었다. 돌체가 막연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석 디자이너는 그 자리에서 디자인으로 구체화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새 작품을 만들어냈다. “직원들끼리 우리는 겉만 명품이지 실상은 제3세계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농담도 자주 하죠. 하하하.”

발리에 합류한 건 2013년 10월이다. 발리는 젊고 밝은 이미지를 주려고 새 디자이너들을 찾고 있었다. D&G 신발 매출을 두 배 이상 올리며 이름을 날린 석 디자이너는 영입 1순위였다. 발리로 옮겨 2014년 그가 선보인 신발은 벤 애플렉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신으며 유행으로 떠올랐다. “패션업계에서는 보통 1년씩 계약을 연장하는데 컬렉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2년 계약을 제안하더군요.”

성공 비결은 역사 공부, 목표는 모든 것의 디자이너

변화무쌍한 패션계에서 살아남은 비결을 묻자 그는 ‘역사를 공부한 덕분’이라고 답했다. 유럽 회사들에는 브랜드별 제품 사진과 역사 등을 정리해 모아둔 문서저장소가 있다. 그는 저장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기 전 무조건 그들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해야 그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떠올릴 수 있어요. 한 달 넘게 문서저장소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다.”

석 디자이너는 생활용품, 인테리어 소품 등 새로운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2013년 ‘제옥스바이석용배’라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가방과 의류 쪽으로 진출했다. 지난 4월에는 이탈리아 벽지회사와 손잡고 세라믹 타일을 선보였다. 이번 방한에서도 패션브랜드 모르간과 가방 의류 신발 출시방안을 논의했다. “카림 라시드처럼 이쑤시개에서 비행기까지 모두 커버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생활 속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 화려하지만 고단한 ‘패션王의 세계’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이나 의상 관련 공부를 하고 패션회사 디자인팀에 들어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대학에서는 봉제 코디네이션 등 옷을 실제로 제작하는 과정을 실습하고, 패션디자인론 복식사 등 이론적인 접근도 한다. 패션디자인 전문학원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관련 인턴십 과정으로 기초를 쌓아 디자이너가 되는 길도 있다.

패션회사의 디자인실 입사는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회사나 패션부자재 회사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도 있다.

개인 디자이너 밑에 들어가 배우는 방법도 있다. 최근엔 인터넷이나 동대문 가로수길 등지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의류를 판매하는 신진 디자이너도 많다.

패션산업이 발달한 유럽 미국 등지에서 공부한 유학파도 있다. 미국 파슨스,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 벨기에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가 세계 3대 디자인스쿨로 꼽힌다. 유학 후 국내에 돌아와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서 경험을 쌓아 취업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출시하는 사례도 있다.

디자이너는 겉으론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무거운 원단을 나르고 밤샘 작업을 하는 등 육체노동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