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생 선배'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전하는 편지
앨런 맥팔레인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 교수가 쓴 릴리에게, 할아버지가의 첫 번째 독자는 일곱 살 손녀 릴리다. 그는 문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10년 뒤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이 궁금해졌을 때 대답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년 후 손녀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에 대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저자는 편지에서 “좋은 사람과 결혼하라” “현명한 어머니가 돼라” 같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원하는 여성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결혼하는 대신 남자들과 평등하게 경쟁하는 독립적이고 야심 있는 새로운 여성의 물결에 동참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누가 남자를 필요로 하지?’라고 생각하는 여성 중 하나가 돼도 좋다고 말이다.

저자는 나아가 여러 사회적 관행과 철학적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할까’ 같은 질문부터 ‘왜 신은 인간의 고통을 보고만 있는 걸까’ ‘법대로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등이다. 이런 질문에 저자는 인생 선배와 인류학자로서 답한다. ‘인간은 왜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폭력 없는 관계는 찾기 힘들며 가족 사이에도 상징적 폭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종·종교적 학살에 대해선 ‘우리’라는 말이 불러오는 광기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이야기는 폭력 사용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의 개념으로까지 확장된다.

저자가 손녀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소한 것에도 의심을 품으라는 것이다. 따뜻한 응원도 잊지 않는다. “나는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네 날개를 마음껏 펼치렴.”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