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아리랑’에서 윤공주(수국 역)와 이창희(득보 역)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아리랑’에서 윤공주(수국 역)와 이창희(득보 역)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연기를 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막 나. 너무 불쌍해서…. 배우들도 연습 때마다 꺽꺽 울어.”

뮤지컬 ‘아리랑’에 감골댁으로 출연하는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개막 직전 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민초들의 고난과 투쟁사를 다룬 작품 소재만으로 배우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배역에 빠져든다는 의미였다.

지난 1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아리랑은 만주와 하와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불린 아리랑 노랫가락에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이야기를 입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며 민중의 생명력을 은유한 김수영의 시 ‘풀이 눕는다’는 노래로 승화됐다.

영웅이 아니라 민초들의 이야기다. 끈질긴 생존과 투쟁의 이민사에서 그들의 삶은 모두가 극적이다. 뮤지컬은 감골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방대한 대하소설을 2시간20분으로 압축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의병이 되는 양반 송수익과 그의 머슴이었다가 아버지의 죽음 후 일제 앞잡이가 되는 양치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감골댁과 수국, 옥비와 득보 남매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감골댁 딸 수국이 일본 감시관에게 겁탈당하면서 본격적인 민초들의 투쟁이 시작된다. 술병 대신 낫을 들고 “빼앗긴 것은 찾아야지”라고 말하는 득보의 모습과 ‘풀이 눕는다’에서 농민들이 보여주는 군무는 이 작품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을 느끼게 했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주 한복판 동굴에 모여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며 부르는 아리랑은 한(恨)의 정서를 건드린다.

쉴 새 없이 관객을 민족적 울분으로 몰아넣는 뮤지컬 아리랑은 상여를 타고 나가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연출가 고선웅이 강조했던 ‘애이불비(哀而不悲·슬프나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로 정리된다.

하지만 30번이 넘는 잦은 장면 전환과 다소 복잡한 인물 관계가 짜임새 있게 엮이지 않고, 주인공 송수익의 캐릭터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결말로 갈수록 이야기가 흩어져 응축되지 못한다. 송수익과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민중의 모습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다. 오히려 극의 중심을 잡는 인물은 모든 걸 잃고 아리랑을 부르는 감골댁 역의 김성녀였다.

“나는 득보 사랑하제”로 시작하는 서정적인 넘버(삽입곡) ‘진달래 사랑’과 이육사의 시에 노래를 붙인 ‘절정’, 민요 아리랑이 급박하고 촘촘하지 못한 전개로 인한 드라마의 허술한 짜임새를 어느 정도 메워준다. ‘풀이 눕는다’와 어우러지는 이소연 국립창극단원(소리꾼 옥비 역)의 창(唱)에선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6만~13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