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 1963년생. 파슨스디자인스쿨 졸업. 히노컨설팅펌 대표(현). 2007년 롸이즈온(베니건스·마켓 오) 콘셉트개발담당 이사. 2010년 2~7월 오리온 부사장. 2010년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2015년 아워홈 고문. CVC 고문. YG푸즈 대표이사(현).
약력 : 1963년생. 파슨스디자인스쿨 졸업. 히노컨설팅펌 대표(현). 2007년 롸이즈온(베니건스·마켓 오) 콘셉트개발담당 이사. 2010년 2~7월 오리온 부사장. 2010년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2015년 아워홈 고문. CVC 고문. YG푸즈 대표이사(현).
‘CJ의 숨은 실세’로 알려졌던 노희영(52) CJ 전 고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았다. 외식 업계의 ‘신의 손’으로 불리는 그는 그의 컨설팅 회사인 히노컨설팅펌과 YG엔터테인먼트가 공동 투자해 ‘YG푸즈’를 설립, 이곳의 대표를 맡으며 외식 업계에 복귀했다. 2014년 9월 CJ에 사표를 낸 지 약 9개월 만의 공식적인 행보다.

사실 올 초부터 그의 움직임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범LG그룹 계열의 종합 식품 회사인 ‘아워홈’ 자문 역할을 하는가 하면 치킨 전문 브랜드 KFC의 리노베이션 컨설팅도 맡았다. 지난해 9월 노 대표가 탈세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으며 CJ를 떠날 때만 해도 ‘당분간 활동을 멈출 것’이라던 업계의 전망이 무색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에 벌써부터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신의 손’이냐, ‘트러블 메이커’냐 등 평이 엇갈리면서다. 2007년 오리온그룹, 2010년 CJ그룹을 종횡무진하며 브랜딩 작업을 했던 그는 ‘사업을 키우는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마케팅과 화끈한 추진력을 검증받은 인물이다. 그런 능력으로 외식업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지만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측근으로 알려지며 경영진의 편애, 내부의 견제 등이 실력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져 ‘트러블 메이커’라는 악평도 얻었다.

정작 논란의 주인공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6월 30일 한경비즈니스가 그를 직접 만났다. 최근 근황에서부터 오리온과 CJ를 거치며 생긴 비화, CJ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그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언론 인터뷰를 피하지 않아 다소 놀랐습니다.
“숨을 필요도, 이유도 없어요. 나는 언제나 그렇듯 내 할 일만 합니다. 그러면 당당하지 못할 것이 없거든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십니까.
“브랜드 기획,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예를 들어 외식 브랜드라면 브랜드에 가장 적합한 콘셉트·메뉴·레시피·인테리어·마케팅까지 연결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히노컨설팅펌을 통해 레스토랑·식품·패션·공연·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나는 멀티펑션(다기능)이 있는 사람이죠.”

오리온·CJ그룹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주로 각 회사의 계열사 브랜드를 리뉴얼하거나 론칭했습니다. 오리온에서는 건강한 식재료로 승부를 건 과자 브랜드 마켓오를 만들었고 적자의 늪을 걷던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를 흑자로 돌려놓았습니다. (음식·문화 등 라이프스타일 기업인) CJ에서는 계열사의 브랜딩은 물론 브랜드 간 시너지를 고려한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한식당인 비비고·계절밥상 등을 만들기도 했지만 MAMA 콘서트와 싸이 콘서트, CGV·엔터테인먼트 등 전 분야에 걸쳐 작업을 했죠. ‘명량’, ‘설국열차’ 마케팅도 직접 했고요.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왜 내 실력을 논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뭔가를 너무 자주 해서 잊어 버렸나(웃음).”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요.
“오리온에 있을 때, 당시 사장이었던 조경민 사장에게 마켓오와 베니건스를 살려 놓을 테니 10억 원만 달라고 했어요. 안 되면 월급을 내놓고 어떡하든 살리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기회를 줬어요. 마켓오는 초코 브라우니로 승부를 봤어요. 멜라닌 파동 때문에 과자는 ‘독’ 취급당할 때였는데 저는 재료와 첨가물로 승부를 걸었죠. 단가도 초코파이보다 몇 배 비싸 다들 ‘미쳤다’고 ‘안된다’고 반대했어요. 그래도 밀어붙였고, 결국 연간 목표액 100억 원에서 첫 달 52억 원을 달성했어요. 베니건스는 메뉴·인테리어 등 모든 것을 다시 손보고 첫 달 목표 매출액 3억 원에서 6억 원까지 끌어올렸어요. 그 이후론 노희영이 하는 말이면 다들 들어줬죠(웃음). CJ 비비고 브랜드에서 나오는 냉동만두가 연매출 1000억 원을 올리는데, 이 레시피를 완성하려고 제가 직접 전국 만두 명가를 다 돌아다녔어요. 영등포 타임스퀘어, 여의도 IFC몰에 CJ브랜드(CGV, 푸드 등)를 기획한 것도 다 제 아이디어고요. CJ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한 곳이잖아요. 저는 그 안에서 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데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갔습니다.”

대기업 내에서 활동 제약은 없었나요.
“개인 사업을 하다가 2007년 처음 조직(오리온)에 들어갔는데, 쉽지 않았어요. 임원들은 나를 무시하고 견제했죠. 이화경 부회장이 날 찾은 것도 오리온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나서였으니까요. 하지만 상황이야 어찌됐건 나는 목표에 충실했습니다. 그 목표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 사장 임명을 거부했었고요. 내가 어딘가의 대표를 맡는 순간 손익을 따지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 브랜드를 제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내 결정을 믿고 따라준 결정권자의 판단 능력도 중요합니다.”

내부에선 노 대표의 업무 스타일에 불만이 많았다던데요.
“안정된 조직에 자꾸만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의 생각을 바꿔 놓아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성질이 더럽다고 욕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차피 나라는 사람은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가장 존경하고 나는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자신해요.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분명 나를 통해 자랐을 것입니다. 나와 일하며 어떻게 진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지 깨닫고 배웠다면 리더로서, 책임자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오리온·CJ에서부터 함께 일한 직원들입니다. (내가) 무능력하다면 그들이 나를 따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오리온에서 CJ로 옮겨 가면서 무책임·‘먹튀’ 등 뒷말이 많았는데요.
“2010년 오리온 부사장에 오른 상태에서 CJ 일을 시작해 비난을 샀는데, 사실 부사장 임명은 이화경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통보였어요. 이유를 보니 내가 만들었던 브랜드들(베니건스·온미디어 등)을 팔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제가 활동할 무대가 없으니 제과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부사장 임명을 하신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오리온에 있을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CJ로 옮기게 된 겁니다.”

그는 2010년 “내 꿈은 CJ에 있다”며 CJ로 자리를 옮겼다. 비비고를 시작으로 초반에는 각 계열사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 그는 이미경 부회장의 지시로 고문직을 맡으면서 CJ그룹 내에서 단기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부각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6월 탈세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6월 말 CJ 측은 노 대표를 CJ제일제당 부사장 겸 CJ푸드빌 최고경영자(CEO) 고문으로 임명해 더 큰 비난을 샀다. 그리고 2014년 9월 노 대표는 사표를 내고 CJ를 떠났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CJ그룹 비자금 조성으로 수감된 상태였고 이미경 부회장은 건강 악화로 미국행을 앞둔 상황이었다.

노 대표의 탈세 혐의에 대해 올 초 법원은 3년간 세금 5억여 원을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노 대표에 대해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2011년과 2012년 종합소득세 포탈 혐의 등에 관해 노 대표의 급여가 계상된 점은 피고인이 당시 경비 지출을 계상함으로써 세금 줄여보려는 의도로 유죄가 인정된다”면서도 “단 2010년 세금 포탈 등에 대해서는 노 대표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세무 신고를 담당하던 세무사에게 지시한 바 없고 검찰 제출 증거를 봐도 인정할 만한 게 없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CJ를 꼭 떠나야만 했나요.
“내가 CJ를 떠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어요. 물론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나를 CJ에 스카우트한 건 (이재현) 회장님이고 나는 그런 회장님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미경) 부회장님께 직접 오더를 받아 그 뜻을 받들어 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두 분이 모두 자리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요. 보스가 없으니 내부에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요. 조직이 혁명을 원하지 않았고 회장님·부회장님이 안 계신 사이에 안정을 원하니 혁명가인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습니다. 나는 다른 혁명이 필요한 곳에 가서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마음먹고 나왔어요.”

다시 CJ에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이제는 내가 약아서 안 갈 것 같아요. CJ에서 일한 6년 동안 많을 것을 경험하고 누렸어요. 나는 CJ가 키워 낸 인물 중 하나이고 이미 CJ에서 받은 게 너무나 많은 사람이죠. 그런데 다시 오라고 했을 때는 아마 내 역할이 축소되겠죠. 그렇다면 내가 갈 이유는 없습니다.”

업계의 예상과 달리 CJ를 떠난 후에도 활동이 활발합니다.
“CJ에 사표를 낸 다음 날부터 다른 일을 시작했어요. KFC의 ‘마이징거’를 내놓았고 7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개장하는 아워홈 푸드 비즈니스 컨설팅을 맡았죠. 6월 중순엔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YG푸즈의 첫 사업으로 홍익대 인근에 ‘삼거리푸줏간’도 오픈했고요. 일하는 무대가 더 넓어졌어요. 좋은 브랜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범위가 전보다 훨씬 넓어진 거죠. 내 무대는 대한민국·글로벌입니다. 이런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준 분이 바로 이미경 부회장님이에요.”
"YG와 손잡고 '제2의 CJ' 만들 겁니다"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과의 불화설도 들리던데요.
“무슨 불화예요. 지금도 같이 일 잘하고 있어요. (휴대전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주며) 매일 카톡도 하는데…. 오늘도 공항에서 만나 함께 아워홈 메뉴 시식을 해요. 확인하지 않은 정보가 그대로 기사에 나가서 그런 소문이 났어요. 최근 사퇴한 김태준 아워홈 전 사장건도 구 부사장과 나와의 불화로 인한 것이라는데, 아닙니다. CJ와 아워홈의 기업 문화가 너무 달라 개인 사업을 하겠다고 김 사장께서 자진 사퇴한 겁니다. 우리 셋 모두 사이가 나쁠 일도 없고요.”

YG푸즈에서는 첫 대표를 맡았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도 책임을 안 진다고 하니까(웃음). 평소 내 스타일대로 끌고 나가면서 책임도 지겠다는 거예요. 이곳에서도 역시 ‘브랜드 시너지’를 보여줄 겁니다. YG도 (CJ처럼) YG라이프스타일 그룹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대기업과 업무 스타일이나 능력 등이 많이 다를 텐데요.
“나는 내가 여기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양현석 대표 역시 오너와 보스로서 존경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직 미발표된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여의도 전경련 빌딩 두 개 층에 내 이름을 건 한식당과 브런치 카페를 9월에 오픈합니다. 내 야심작이죠. 이것마저 ‘지라시’에도 나왔다고 하더군요. 이미경 부회장에게 잘 보이려고 그녀의 측근인 노희영을 전경련 측에서 밀어주는 것 아니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잘하려고 합니다. 노희영의 브랜드, 역시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콘셉트를 보게 될 것입니다.”

노 대표는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푸드 컨설턴트로 전향했다. 1997년 퓨전 레스토랑 궁을 오픈한 후 누들 바 호면당, 레스토랑 느리게 걷기, 그릴H, 갤러리아 백화점 WEST 푸드코트 등 국내 유수의 레스토랑을 컨설팅했다. 2007년 오리온 계열사인 롸이즈온 콘셉트개발담당 이사로 활동하며 오리온의 마켓 오 제과 브랜드를 기획, 론칭했고 2010년 오리온의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같은 해 CJ로 자리를 옮겨 CJ푸드빌, CJ CGV, CJ E&M 등 계열사 전반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활동해 왔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