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업 60주년을 맞은 토종 면도기업체 도루코가 ‘제2의 도약’을 선언하고 나섰다. 공격적인 확장을 통해 질레트, 시크 등 글로벌 업체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것. ‘싸구려’라는 외면 속에 군대, 목욕탕에서 쓰는 저가 제품으로 명맥을 유지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해외 업체들의 ‘안방’인 미국과 유럽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온라인 시장 성장은 ‘기회’

서울 서초동 도루코 본사에서 13일 만난 백학기 대표(사진)는 “비전인 ‘글로벌 도루코 1020’ 달성을 위한 승부수를 던질 때”라며 “올 매출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로벌 도루코 1020은 2020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0%로 매출 1조원을 올리겠다는 뜻이다. 작년 도루코 매출은 2623억원, 세계시장 점유율은 3% 정도였다.

도루코는 13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면서 매출의 8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중동·아시아 등 이머징마켓에서는 저가 제품으로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글로벌 업체들의 브랜드 파워와 텃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대형 유통사 자체상표(PB) 제품을 생산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루코는 온라인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온라인 면도용품 시장 규모는 1억8900만달러(약 2136억원)로 전년 대비 약 70% 급증했다. 일정액을 받고 매달 면도기를 배달해주는 벤처인 ‘달러셰이브클럽’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백 대표는 “온라인 시장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수요를 잠식해 갈 것”이라며 “브랜드와 상관없이 품질과 가격이 중요해지는 만큼 도루코에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최근 영국에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프랑스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온라인몰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미 운영 중인 미국 몰에서는 20~30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생산 능력이 없는 온라인업체를 대상으로 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시장도 공략 중이다. 달러셰이브클럽은 모든 제품을 도루코에서 공급받는다.

신시장 개척도 병행한다. 동·남유럽, 브라질 시장을 공략할 영업조직을 구축 중이다. 베트남에서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5200㎡ 규모 신공장을 짓고 있다. 이를 통해 아시아권 공략에 한층 속도를 낼 방침이다.

○수입품 밀물…품질혁신 계기로

백 대표는 “1987년 찾아온 위기가 도루코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도루코는 한때 국내 면도기 시장을 독점했다. 하지만 정부의 수입자유화 조치로 해외 제품이 물밀 듯 들어왔다. 매출은 80% 이상 급감했다. 누구든 써보면 알 수 있을 만큼 품질 차이가 컸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연 매출의 15%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품질혁신으로 돌아왔다. 세계 최초로 6중날과 7중날 제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촘촘한 면도가 가능해진 것. 백 대표는 “날을 ‘ㄱ’자로 굽히는 벤딩 기술은 도루코만의 경쟁력”이라며 “경쟁사들은 이 기술이 없어 용접을 통해 굽힌 것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고 했다. 용접 없이 날을 굽히면 원가도 줄어들고, 좁은 공간에 좀 더 많은 날을 넣을 수 있다.

이 같은 기술력은 사업 다각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도루코는 정밀가공 및 열처리, 코팅기술 등을 바탕으로 쿡웨어 브랜드인 ‘마이셰프’, 원예용품 브랜드인 ‘포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셰프는 올해 처음 이집트 등 해외 5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면서 수출에 물꼬를 텄다.

이현동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