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실패를 기리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 사진은 일라이릴리 직원들의 사회공헌활동 모습.
세계적인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실패를 기리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 사진은 일라이릴리 직원들의 사회공헌활동 모습.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패를 기반으로 더 큰 성공을 이끌어내는 데 능숙한 기업은 많지 않다. 대부분 기업은 실패한 의사결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실패한 의사결정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하버드대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기업 현장에서 징계 대상인 실패가 전체의 몇 % 정도인지 물었다. 설문에 참여한 CEO들은 2~5%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이와 함께 그렇다면 실제로 잘못을 추궁하고 실패한 사람을 문책한 사례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CEO들은 70~90%라고 답했다. 이는 많은 기업이 적절한 실패 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실패한 의사결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패한 의사결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한 의사결정 중에는 예방 가능한 것들이 있다. 이는 일상적 업무 중에 자주 발생한다. 소비자의 서비스 문의 응대, 거래처와의 업무 협의 등 일상적 업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못해 발생하는 실패들이다. 대개 규정 무시와 부주의, 무능력이 원인인 경우다. 이와는 달리 복잡한 시스템으로 유발되는 실수가 있다. 그동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실수를 말한다. 신제품 개발, 신시장 구축 등의 과정에서 생기는 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상에서 설명한 두 가지 종류의 실패는 그 유발되는 원인과 배경이 전혀 다른 만큼 해당 실패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전혀 달라야 한다.

빌 게이츠가 실패한 경영자 뽑는 까닭은…
반면 실패한 의사결정 중 좋은 실패도 있다. 바람직한 실패란 모의 실험 내지 인큐베이팅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많은 기업이 신약 개발, 신사업 출범, 혁신제품 설계, 미개척 시장의 소비자 반응 시험 등을 수행하는 이유는 해당 실험을 통해 미리 시행착오를 하기 위해서다. 모의 실험을 통해 경험하는 실패는 실제 해당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더 큰 실패를 막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실패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혹은 신시장 개척 과정에서 나온 실패를 은폐하거나 심지어 실패하지 않기 위해 소극적인 의사결정 내지 방어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향후 더 큰 실패를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사내에 실패한 의사결정을 용인하고, 실패한 의사결정을 통해서 배우려는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적 제약사인 일라이릴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귀중한 지식을 알려주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준 실패를 기리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 일라이릴리가 실패한 프로젝트를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이유는 이들 실패가 회사의 더 큰 손실을 막아준 귀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를 미리 경험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작은 비용으로 파티를 열어 많은 직원과 공유하기 위함이다.

A G 래플리 P&G 회장은 재직기간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쓴 대표적인 CEO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점진적인 혁신은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만큼 커다란 성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낮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더라도 급진적인 혁신을 도출할 수 있는 시도가 많기를 기대했다. 이런 사실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몇 번 실패하더라도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제시해주기 위해 ‘게임 체인저’란 책을 출간했다. 해당 서적을 통해 P&G 역사상 가장 뼈저린 실패 사례 11개를 소개하고, 각각의 실패한 의사결정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공유했다.

빌 게이츠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게 마련이다. 밤낮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 난국을 벗어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