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삼대 한집살림, 아내에게 항상 미안해…부부싸움 해결법? 그냥 먼저 사과하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
"'건강한 이혼'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충분한 조정·중재 거쳐 충격 완화해야"
집에선 무뚝뚝한 가장
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아내에게 점수 딸 기회 별로 없어
수많은 이혼사례 겪어보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죠
'건강한 이혼' 중재자
기존 이혼소장 상대비난 가득해 객관식 소장 도입…감정소모 줄여
이혼 성격별로 맞춤형 조정…6개월만에 조정성공률 세 배 증가
"'건강한 이혼'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충분한 조정·중재 거쳐 충격 완화해야"
집에선 무뚝뚝한 가장
난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아내에게 점수 딸 기회 별로 없어
수많은 이혼사례 겪어보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죠
'건강한 이혼' 중재자
기존 이혼소장 상대비난 가득해 객관식 소장 도입…감정소모 줄여
이혼 성격별로 맞춤형 조정…6개월만에 조정성공률 세 배 증가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59)은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 살림을 하고 있다. 올해 아흔여섯이 되신 부친, 법원장 부부, 아들과 딸 등 3대(三代)가 한집에 산다. 국내 네 가구 중 하나는 1인 가구일 정도로 개인주의가 일상화된 시대다. 각종 가사사건을 다루는 서울가정법원의 수장은 세대 간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을까. 서울 양재동에 있는 중국 광둥식 샤부샤부집 일품헌에서 여 법원장을 만났다. 그는 “예순이 다 된 지금도 퇴근이 늦어 아버지께 인사를 빠뜨리면 이튿날 호되게 야단맞는다”며 “3대가 함께 사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서로 반 보씩 양보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혼부부 사례 보며 아내에게 반성
지난 2월 서울가정법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직원들과 가끔 이 식당을 찾는다. 여 법원장은 “날은 덥지만 독특한 곳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며 “광둥식으로 끓여낸 육수 맛이 이국적이면서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고 소개했다. 일품헌 정식을 주문했다. 둥그런 식탁에 개인화로가 하나씩 나왔다. 은색 냄비에서 육수가 보글보글 끓었다. 한우, 동충하초를 비롯한 버섯류, 완자, 모둠채소 등이 차례로 상을 채웠다. 취임 4개월을 맞은 소회를 부탁했더니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을 하나 했다. “가정법원에 발령받고 나서 아내가 그러더군요. ‘앞으로 가정에 대한 사례 연구를 많이 할 테니 집안에서의 변화가 기대된다’고요. 제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입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살면서 아내에게 점수 딸 일이 많이 없었지요. 법원장은 가사사건을 직접 처리하지는 않지만 판결은 모두 읽어봅니다. 이혼부부들의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아, 내가 아내에게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상처가 됐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종업원이 육수를 먼저 맛보라고 했다. 한약재와 버섯 등 12가지 재료를 넣고 푹 고아냈다고 한다.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첫맛은 담백한데 뒷맛은 사골처럼 깊고 구수했다. 오랜 시간 우려낸 맛이었다.
건강한 이혼 하도록 지원할 것
서울가정법원에선 이혼재판을 비롯해 가사재판, 소년보호재판, 가정보호재판, 아동보호재판, 가족관계등록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여 법원장은 “가정법원은 전통적인 심판기능을 하는 법원과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각급 법원에선 원고 피고를 나눠 이기고 지는 것을 두고 다툽니다. 하지만 가정법원에선 잘잘못을 가리는 판단만 하지 않고 후견·복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쉽게 말해 갈등이 일어난 지점을 찾아내 전문가를 동원해 갈등을 풀도록 돕는 것이지요. 예컨대 이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부에게 심리검사, 장기 상담, 부모교육 등을 지원합니다. 법원에 와 보니 가정법원에서 할 수 있는 후견업무가 정말 많더군요. 가정법원에 있다 떠나는 법관들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채소와 버섯부터 살짝 익혀 맛을 봤다.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니 신선한 채소에 밴 육수향이 그윽하게 퍼졌다. 매콤한 소스는 끝맛을 개운하게 잡아줬다.
가사사건 관리모델 도입…조정률 세 배 늘어
여 법원장은 인터뷰 내내 ‘건강한 이혼’을 강조했다. “살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그 충격을 완화해야 해요. 가정법원에선 준비된 이혼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물론 조정으로 부부가 다시 결합하도록 중재도 하지요. 많은 부부가 홧김에 이혼을 결심합니다. 이혼 후 자신과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과 상처에 대한 고려 없이요. 이혼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이다 보니 자신의 입장과 아이의 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하게 이혼해야 부부도 아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부터 신(新)가사사건 관리모델을 도입했다. 이혼사건을 성격 갈등, 부정행위, 재산 분할, 황혼이혼, 다문화가정 등으로 선별해 조정하는 제도다. “먼저 이혼소장을 개선했습니다. 서술형 소장에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여야 본인이 소송에서 이기니 소장 작성부터 상대를 비난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게 객관식 소장이에요. 불필요한 감성 소모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또 이혼사건을 조기 선별해 맞춤형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도입 6개월 만에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시행 전 6개월간 조정에 회부된 건수가 97건인데 시행 후 6개월 만에 980건으로 910% 늘어났습니다. 조정성공률도 320% 증가했고요. 제도를 더 보완해서 정착시킬 생각입니다.”
“자녀에게 자기인생 설계할 기회 주세요”
“여기 맥주 좀 주세요.” 맥주가 한 잔씩 돌아갔다. 그는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서비스인 탕수육이 나왔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맥주와 아주 잘 어울렸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다들 빨라졌다. 그는 “국물이 담백해서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며 음식을 여러 차례 권했다.
집안에선 어떤 아버지인지 물었다. “내가 이 집의 가장이니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아요. 대신 설득합니다. ‘네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라’고요. 그래야 자기 판단능력도 커지고 인생을 설계할 능력도 키워지니까요. 그런 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방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켜보다 크게 잘못되는 것 같으면 ‘그쪽 말고 이런 방향도 있는데 한번 생각해볼래’ 하고 이야기했어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농사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맏이인 아들은 게임개발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둘째인 딸은 직장생활을 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남미에서 2년을 보내고 글로벌 봉사단체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성정에 맞는 직업을 찾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어요.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녀를 믿어주고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그걸 잘해낼 수 있을까요. 아이 행복이 우선입니다.” 술잔이 한 순배 더 돌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불콰해졌다.
경력법관 출신 중 첫 고법부장 승진
여 법원장은 사법연수원 13기로 198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법관인생을 시작했다. 서울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고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원장을 지냈다. 법조계에서 그는 용인술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비결을 살짝 물어봤다. “의정부지법에 있을 때 일이에요. 한 직원이 큰 실수를 해서 방으로 불렀습니다. 직원 입장에선 ‘지법원장에게 야단맞겠구나’ 했겠죠. 제가 그랬습니다. ‘요즘 일이 많아 힘들지. 우리 언제 소주 한잔 하지.’ 이후 법원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발생했는데 그 직원이 바로 손들고 나서더군요. 일하는 밀도가 달라졌지요.”
여 법원장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판사로 재직하다 법복을 벗고 1998년부터 3년간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경력법관으로 법원에 돌아온 뒤 2008년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변호사생활을 해본 법관 중 고법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바늘구멍 뚫기다. 재야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물어봤다. “법원 테두리 안에 있다가 재야생활을 하면서 소송 당사자들을 가까이서 보게 됐습니다. 그후 다시 법원에 오니 재판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더군요. ‘이런 상황이면 당사자가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당사자의 말을 더 경청하게 됐습니다.”
후식으로 국수가 나왔다. 칼국수가 끓는 동안 ‘부부싸움 현명하게 푸는 법’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순이 넘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싸운 뒤에는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푸는 편입니다. ‘여보, 내가 과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하지요.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만 꽤 잘 통합니다.”
법원 부모안내교육 어떤 내용 담겼을까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이혼 숙려기간에 부부에게 ‘부모안내교육’을 권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부가 이 교육을 받는다. 부모가 이혼할 때 자녀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부모가 자녀를 돕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혼하는 부모가 경험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혼부모가 자녀와 건강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갈지 등을 안내한다. 장진영 서울가정법원 공보판사는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도 자녀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법원에서 부모안내교육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여상훈 법원장의 단골집 일품헌
12가지 버섯으로 우린 육수…푸짐한 한우·해산물 '일품'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이 다니는 일품헌은 중국 광둥식 샤부샤부 전문점이다. 상하이에서 식당 다섯 곳을 운영하는 재중동포 출신 주인은 2013년 11월 국내에 진출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5번 출구에서 매봉역 방향으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 골목에서 간판을 찾을 수 있다. 200여석의 홀과 중국 유명 도시 이름을 딴 방이 13개 있다. 주메뉴는 1인 샤부샤부다. 오후 3시까지만 판매하는 점심특선 샤부샤부(1만8000원), 한우정식(2만8000원), 한우와 해산물 등이 나오는 일품헌 정식(4만8000원)이 대표 메뉴다. 망태버섯 능이버섯 동충하초 그물버섯 송이버섯 소나무버섯 차나무버섯 큰그물버섯 등 12가지 버섯을 우려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02)574-7117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이혼부부 사례 보며 아내에게 반성
지난 2월 서울가정법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직원들과 가끔 이 식당을 찾는다. 여 법원장은 “날은 덥지만 독특한 곳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며 “광둥식으로 끓여낸 육수 맛이 이국적이면서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고 소개했다. 일품헌 정식을 주문했다. 둥그런 식탁에 개인화로가 하나씩 나왔다. 은색 냄비에서 육수가 보글보글 끓었다. 한우, 동충하초를 비롯한 버섯류, 완자, 모둠채소 등이 차례로 상을 채웠다. 취임 4개월을 맞은 소회를 부탁했더니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을 하나 했다. “가정법원에 발령받고 나서 아내가 그러더군요. ‘앞으로 가정에 대한 사례 연구를 많이 할 테니 집안에서의 변화가 기대된다’고요. 제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입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살면서 아내에게 점수 딸 일이 많이 없었지요. 법원장은 가사사건을 직접 처리하지는 않지만 판결은 모두 읽어봅니다. 이혼부부들의 수많은 사례를 보면서 ‘아, 내가 아내에게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상처가 됐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종업원이 육수를 먼저 맛보라고 했다. 한약재와 버섯 등 12가지 재료를 넣고 푹 고아냈다고 한다. 뜨끈한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첫맛은 담백한데 뒷맛은 사골처럼 깊고 구수했다. 오랜 시간 우려낸 맛이었다.
건강한 이혼 하도록 지원할 것
서울가정법원에선 이혼재판을 비롯해 가사재판, 소년보호재판, 가정보호재판, 아동보호재판, 가족관계등록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여 법원장은 “가정법원은 전통적인 심판기능을 하는 법원과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각급 법원에선 원고 피고를 나눠 이기고 지는 것을 두고 다툽니다. 하지만 가정법원에선 잘잘못을 가리는 판단만 하지 않고 후견·복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쉽게 말해 갈등이 일어난 지점을 찾아내 전문가를 동원해 갈등을 풀도록 돕는 것이지요. 예컨대 이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부에게 심리검사, 장기 상담, 부모교육 등을 지원합니다. 법원에 와 보니 가정법원에서 할 수 있는 후견업무가 정말 많더군요. 가정법원에 있다 떠나는 법관들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채소와 버섯부터 살짝 익혀 맛을 봤다. 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니 신선한 채소에 밴 육수향이 그윽하게 퍼졌다. 매콤한 소스는 끝맛을 개운하게 잡아줬다.
가사사건 관리모델 도입…조정률 세 배 늘어
여 법원장은 인터뷰 내내 ‘건강한 이혼’을 강조했다. “살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그 충격을 완화해야 해요. 가정법원에선 준비된 이혼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물론 조정으로 부부가 다시 결합하도록 중재도 하지요. 많은 부부가 홧김에 이혼을 결심합니다. 이혼 후 자신과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과 상처에 대한 고려 없이요. 이혼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이다 보니 자신의 입장과 아이의 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하게 이혼해야 부부도 아이도 행복할 수 있어요.”
서울가정법원은 지난해부터 신(新)가사사건 관리모델을 도입했다. 이혼사건을 성격 갈등, 부정행위, 재산 분할, 황혼이혼, 다문화가정 등으로 선별해 조정하는 제도다. “먼저 이혼소장을 개선했습니다. 서술형 소장에선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여야 본인이 소송에서 이기니 소장 작성부터 상대를 비난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게 객관식 소장이에요. 불필요한 감성 소모를 줄이도록 했습니다. 또 이혼사건을 조기 선별해 맞춤형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도입 6개월 만에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시행 전 6개월간 조정에 회부된 건수가 97건인데 시행 후 6개월 만에 980건으로 910% 늘어났습니다. 조정성공률도 320% 증가했고요. 제도를 더 보완해서 정착시킬 생각입니다.”
“자녀에게 자기인생 설계할 기회 주세요”
“여기 맥주 좀 주세요.” 맥주가 한 잔씩 돌아갔다. 그는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서비스인 탕수육이 나왔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맥주와 아주 잘 어울렸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속도가 다들 빨라졌다. 그는 “국물이 담백해서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며 음식을 여러 차례 권했다.
집안에선 어떤 아버지인지 물었다. “내가 이 집의 가장이니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아요. 대신 설득합니다. ‘네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라’고요. 그래야 자기 판단능력도 커지고 인생을 설계할 능력도 키워지니까요. 그런 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방임하지는 않았습니다. 지켜보다 크게 잘못되는 것 같으면 ‘그쪽 말고 이런 방향도 있는데 한번 생각해볼래’ 하고 이야기했어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농사라고 한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맏이인 아들은 게임개발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둘째인 딸은 직장생활을 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남미에서 2년을 보내고 글로벌 봉사단체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성정에 맞는 직업을 찾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어요.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녀를 믿어주고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그걸 잘해낼 수 있을까요. 아이 행복이 우선입니다.” 술잔이 한 순배 더 돌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불콰해졌다.
경력법관 출신 중 첫 고법부장 승진
여 법원장은 사법연수원 13기로 198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법관인생을 시작했다. 서울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대전고법 부장판사, 의정부지법원장을 지냈다. 법조계에서 그는 용인술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비결을 살짝 물어봤다. “의정부지법에 있을 때 일이에요. 한 직원이 큰 실수를 해서 방으로 불렀습니다. 직원 입장에선 ‘지법원장에게 야단맞겠구나’ 했겠죠. 제가 그랬습니다. ‘요즘 일이 많아 힘들지. 우리 언제 소주 한잔 하지.’ 이후 법원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발생했는데 그 직원이 바로 손들고 나서더군요. 일하는 밀도가 달라졌지요.”
여 법원장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판사로 재직하다 법복을 벗고 1998년부터 3년간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경력법관으로 법원에 돌아온 뒤 2008년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변호사생활을 해본 법관 중 고법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바늘구멍 뚫기다. 재야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물어봤다. “법원 테두리 안에 있다가 재야생활을 하면서 소송 당사자들을 가까이서 보게 됐습니다. 그후 다시 법원에 오니 재판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더군요. ‘이런 상황이면 당사자가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당사자의 말을 더 경청하게 됐습니다.”
후식으로 국수가 나왔다. 칼국수가 끓는 동안 ‘부부싸움 현명하게 푸는 법’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순이 넘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싸운 뒤에는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푸는 편입니다. ‘여보, 내가 과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요’ 하지요.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만 꽤 잘 통합니다.”
법원 부모안내교육 어떤 내용 담겼을까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이혼 숙려기간에 부부에게 ‘부모안내교육’을 권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부가 이 교육을 받는다. 부모가 이혼할 때 자녀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부모가 자녀를 돕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혼하는 부모가 경험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혼부모가 자녀와 건강한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갈지 등을 안내한다. 장진영 서울가정법원 공보판사는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도 자녀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법원에서 부모안내교육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여상훈 법원장의 단골집 일품헌
12가지 버섯으로 우린 육수…푸짐한 한우·해산물 '일품'
여상훈 서울가정법원장이 다니는 일품헌은 중국 광둥식 샤부샤부 전문점이다. 상하이에서 식당 다섯 곳을 운영하는 재중동포 출신 주인은 2013년 11월 국내에 진출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5번 출구에서 매봉역 방향으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 골목에서 간판을 찾을 수 있다. 200여석의 홀과 중국 유명 도시 이름을 딴 방이 13개 있다. 주메뉴는 1인 샤부샤부다. 오후 3시까지만 판매하는 점심특선 샤부샤부(1만8000원), 한우정식(2만8000원), 한우와 해산물 등이 나오는 일품헌 정식(4만8000원)이 대표 메뉴다. 망태버섯 능이버섯 동충하초 그물버섯 송이버섯 소나무버섯 차나무버섯 큰그물버섯 등 12가지 버섯을 우려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한다. (02)574-7117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