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한 구멍에 세 알씩 넣는 까닭은?
“어린 시절 영암 스님이 씨앗을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씩 넣으라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병해충에게, 하나는 바람에 주고 하나는 사람이 먹어야지’라고 하시더군요. 병충해를 이기려고 하면 더 독한 놈이 돼 돌아온다고요. 내 몸 안의 병까지도 공존하자는 게 바로 ‘신심명’이었습니다.”

충북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68·사진)이 선불교의 고전 신심명 해설서를 냈다. 신심명은 1400년 전 선종의 제3대 조사였던 승찬 스님이 지은 선어록이다. 짧은 글이지만 불교의 모든 가르침과 선의 근본이 이 글에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일 석종사에서 혜국 스님을 만났다.

“신심명은 그 전체가 결국 ‘중도’를 한 구절 한 구절씩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내가 내 안에 갇힌 ‘나’가 아니라 우주에 가득 찬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덩실덩실 춤이 나올 것입니다.”

혜국 스님의 신심명 강설은 공부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1400년 전의 언어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책에 담긴 모든 글은 혜국 스님이 손으로 쓴 것이다. 혜국 스님은 독자에게 “눈으로만 읽지 말고 가슴으로 읽어달라”고 말했다. 읽다가 책을 덮어놓고 생각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읽어달라는 의미였다.

“인간의 죄는 모두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도 신심명을 읽으며 깨달았지요. 깜깜한 밤에도 태양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도 결국 감정이 광명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순간 감정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버리고 광명으로 돌아오는 것도 본인의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결국 이 우주 전체가 내 마음이 만든 그림자니까요.”

혜국 스님은 조계종 내에서 치열한 수행담으로 유명하다. 특히 해인사 장경각 법당에서 10만배 정진을 마친 뒤 오른손을 천으로 감아 불을 붙인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금생(今生)에도 내생에도 참선만 하겠다. 불도를 이뤄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 성불토록 하겠다”며 손가락 세 개를 태워 바치는 소지(燒指)공양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결연한 뜻을 다잡았던 것. 이후 태백산 도솔암에서 솔잎과 생쌀로 생식하며 2년7개월 동안 눕지 않고 정진하는 등 전국 선방에서 수십 차례 안거에 참여했다.

혜국 스님은 “‘나’라는 존재가 내 안에만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에너지가 모두 ‘나’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든 산소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태양열 등 우주 자연의 에너지를 빌려 ‘나’의 기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우주의 전체가 내 생명이고 나를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나무 한 그루, 벌 한 마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혜국 스님은 “결국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투쟁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중도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충주=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