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伊 피렌체서 탄생
23~26일 세종문화회관서
서울시오페라단 제작·공연
1607년 2월24일, 이탈리아 만토바의 빈첸초 곤차가 공작 저택에서 초연된 ‘오르페오’를 지켜본 가르멜회 신부 케루비노 페라리의 감상평이다. 이날 객석을 메운 청중 200여명은 신선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처음 접한 형태의 노래극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작곡한 이 작품에는 이야기와 대규모 편성의 기악 합주, 풍성한 합창과 흥겨운 춤곡이 어우러졌다.
페라리는 “시의 내용은 아름답고, 형태는 더 아름답다”는 기록을 남겼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공작은 “모든 청중이 상당히 만족했다”고 편지에 썼다.
오페라사(史)의 기념비적 작품인 오르페오가 70년 한국 오페라 역사상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오페라단은 7월23~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이 작품을 국내 초연한다.
○최초의 본격 오페라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운동의 영향으로 ‘음악이 있는 연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음악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악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1600년 피렌체에서 초연한 자코모 페리와 줄리오 카치니의 ‘에우리디체’다. 7년 뒤 오르페오가 탄생했다. 에우리디체가 단순한 악기 편성과 단조로운 선율의 반복 등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오르페오는 연주자 규모,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적 결합 등에서 요즘의 오페라 형태를 갖췄다. 이 작품을 최초의 본격 오페라로 평가하는 이유다.
이번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은 정경영 한양대 작곡과 교수는 “에우리디체가 음악과 말의 접목을 처음 시도한 ‘실험작’이라면 오르페오는 음악극의 ‘종합선물세트’와 같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페리와 카치니는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 노래하는 부분)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데 신경을 써서 극이 상대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지는 데 비해 몬테베르디는 대사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할지에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몬테베르디는 호소력 짙은 작곡가”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장이 오르페오를 무대에 올리려고 생각한 건 15년 전이다. 당시 미국에서 바로크 음악을 전공하고 귀국한 제자 정 교수와 ‘왜 국내에서는 오르페오가 무대에 오르지 않을까’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고음악 연주자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오르페오는 성악과 현악·관악기 등 다양한 분야의 연주자가 필요한데 고악기를 다루고 고음악 주법을 익힌 연주자가 얼마 되지 않았던 거죠.”(이 단장)
이 단장이 지난해 오르페오 공연을 제안했을 때 정 교수는 여전히 손사래를 쳤다. “편성이 단순한 베네치아 상업오페라면 모르지만 다양한 고악기를 쓰는 오르페오는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단장님의 ‘엔조이 몬테베르디’라는 말에 넘어갔습니다. 고음악에 천착하지 말고, 몬테베르디의 진정성 있고 호소력 짙은 작품을 국내 관객이 즐기게 해주자는 거였죠.”(정 교수)
40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에서 따온 줄거리는 관객이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을 여행하는 천재 악사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다.
이번 공연은 ‘길’에 중점을 두고 무대를 꾸민다. 고대 그리스나 1600년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 2015년 서울이 아닌 시공간을 초월한 무대를 선보인다.
음역이 다른 두 성악가가 번갈아 무대에 서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바리톤 한규원과 테너 김세일이 오르페오 역을 맡았다. 정 교수는 “당시 성악가는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 음역을 지니고 있었다”며 “바리톤은 넉넉한 성량으로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하고, 테너는 당시 스타일을 살린 깨끗한 음색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25명의 고음악 전문 연주자로 꾸려진 바흐 콜레기움 서울이 연주를 맡는다. 쳄발로와 류트 등으로 구성된 저음 파트에서는 고악기를 쓴다. 지휘자 양진모는 직접 쳄발로를 연주하며 지휘를 겸한다. 주로 성악가 독창 파트다. 이 단장은 “지휘자가 건반 연주를 겸하는 것은 레치타티보 호흡을 맞출 때 이상적 조합”이라며 “시대를 뛰어넘은 가장 순수한 음악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