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에 1조원에 매각…내달 법정관리 졸업
◆뚝심으로 정부 설득
팬오션의 구조조정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2013년 4월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선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던 STX그룹 계열사인 팬오션 처리 방식을 놓고 금융당국과 홍 회장 간 이견이 첨예하게 맞섰다.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산업은행이 인수하라”는 정부 요청에 홍 회장은 “인수할 수 없다”고 버텼다. 팬오션이 맺은 악성 장기용선계약 때문에 산업은행이 지원한 자금이 해외 용선주에게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홍 회장의 고집에 팬오션은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산업은행은 STX에 이어 동양그룹, 현대그룹, 한진그룹, 동부그룹 등 2년 넘게 이어진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 및 투자자들의 압박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채권 회수에만 급급하다’ ‘채권단 내 의견 조율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림의 팬오션 인수 과정에서도 1.25 대 1 감자에 대해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며 홍 회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법정관리 워크아웃 장점 결합
팬오션은 1년6개월여 만에 하림그룹에 매각돼 법정관리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회생계획상 영업이익(1086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2146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부채비율을 204%까지 낮춘 덕분이었다. 산업은행도 2013년 입은 2000억원의 손실을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산업은행이 팬오션에 적용한 새로운 구조조정 방식이 주효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산업은행은 팬오션 구조조정을 위해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의 장점을 결합했다. 팬오션의 법정관리 인가 전 이례적으로 2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고, 법정관리를 통해 악성 장기용선계약을 해지했다.
워크아웃은 보통 신규자금은 지원할 수 있지만 대규모 채무재조정이 쉽지 않고, 법정관리는 반대로 모든 채권의 공정한 재조정이 가능하지만 충당금 부담으로 자금 지원이 어렵다. 홍 회장은 당시 “정치권이나 정부의 개입 여지를 막고, 적기에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은 과제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은 홍 회장과 산업은행에 남은 과제다. 특히 채권단 자율협약 중인 STX조선, 성동조선, SPP조선, 대선조선 등 4개 조선사는 지금 상태로는 독자적인 정상화가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산업은행은 STX조선과 성동조선의 통합 경영이나 합병, STX조선과 대우조선해양의 시너지 극대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