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는 상장 독려, 국세청은 세수 확보…상장 앞둔 기업에 들이닥친 세무조사
마켓인사이트 6월17일 오후 4시41분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에 ‘국세청 세무조사 경계령’이 떨어졌다. 국세청이 상장 예정이거나 이제 막 상장한 기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사례가 최근 1년 새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기업들의 상장을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를 틈타 세무당국이 세수 확보에 나서면서 부처 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상장 예정이던 수도권 지역의 반도체 부품업체 U사는 최근 상장을 내년 이후로 연기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고 재무제표에도 문제가 없지만 얼마 전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상장을 미뤘다는 얘기다. 회사 관계자는 “상장으로 공장 증설 등 신규 투자를 위한 숨통이 트이길 기대했는데 오히려 ‘세금폭탄’을 맞게 생겼다”며 “내부적으로 상장을 괜히 추진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휴대폰케이스 제조업체인 슈피겐코리아도 코스닥시장 상장을 한 달 앞둔 지난해 10월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2009년 회사 창립 이후 처음이었다. 결국 8억원의 법인세를 부과받았지만 당시엔 당기순이익 등 재무제표에 큰 변화가 생겨 상장 연기를 검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렸다. 올 상반기 상장 예정인 제약업체 A사는 지난 2월 143억원의 법인세를 추징당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재무 담당 인력이 적은 중소기업은 세무조사와 상장 작업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 때문에 상장을 늦추거나 (세금 추징으로)아예 포기해버리는 기업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국세청이 상장 직전의 기업을 골라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통상 비상장 기업들이 매출 영업이익 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상장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그에 맞춰 세무조사에 나선다는 것. 허태현 세무사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웬만한 상장사는 모두 세무조사를 받았다”며 “국세청이 새로운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상장 직전의 비상장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이례적으로 상장 직후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상장한 지 1년도 안된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을 경우 주주 신뢰나 주가에 큰 타격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세무조사가 단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5월 자동차 내장부품 소재 공급 회사인 NVH코리아가 상장 5개월 만에 세무조사를 받은 데 이어 작년 말 상장한 제일모직은 지난 4월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하면 각종 혜택을 주겠다며 설득해 놓고선 막상 상장하려고 하면 세금폭탄을 투하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정기 세무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일 뿐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