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대형주 베팅…수천억 빠져나가도 고수익
대규모 환매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맷집 좋은 펀드’가 주목받고 있다. ‘신영밸류고배당’ ‘KB밸류포커스’ ‘한국투자네비게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차익 실현 수요가 늘면서 이들 펀드에서 수천억원이 빠져나갔지만 대형주 위주의 투자 전략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주식형펀드 5조8000억여원 이탈

싼 대형주 베팅…수천억 빠져나가도 고수익
올 들어 지난 14일까지 국내 주식형펀드(액티브형)에서 5조8141억원이 빠져나갔다. 코스피지수가 2100선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보이자 환매 물량이 대거 쏟아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펀드 환매가 늘면 수익률은 떨어진다. 가입자에게 돈을 돌려주기 위해선 투자 종목을 지속적으로 매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량 환매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이 꾸준한 펀드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신영밸류고배당 펀드 설정액은 올초 3조1980억원에서 현재 2조7132억원으로 15.15%(4848억원)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올해 수익률은 13.25%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0.69%)을 웃돈다.

이 펀드 운용을 책임지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주가가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팔지 않는 전략으로 환매가 펀드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며 “포트폴리오(투자 종목) 분산이 잘된 것도 피해를 줄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KB밸류포커스 펀드도 올해 설정액이 26.99%(4663억원) 급감했지만 수익률은 13.59%로 괜찮은 편이다. 한국투자네비게이터 펀드 역시 설정액이 18.8%(2293억원) 줄었지만 코스피지수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17.37%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대형주 투자 전략으로 ‘선방’

‘맷집 좋은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들은 대형주 투자 전략이 대규모 환매에도 불구하고 좋은 수익률을 올린 또 다른 비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투자네비게이터 펀드를 굴리는 박현준 한국투자신탁운용 코어밸류부문장은 “올 상반기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인 게 사실이지만 대형주는 뛰어난 방어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 부문장은 “외국인 자금 유입세를 고려할 때 연말까지 대형주의 수급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며 “특히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은 정보기술(IT) 분야 수출주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KB밸류포커스 펀드는 가치주 위주의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유지하는데도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최웅필 KB자산운용 상무는 “바이오 및 화장품주만 놓고 볼 때는 과열 국면으로 판단한다”며 “소외된 대형 우량주와 배당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대안”이라고 했다.

허 부사장은 “저평가된 중소형주가 많이 오른 상태여서 대형주 비중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며 “배당주와 우선주도 지속적으로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 종목의 단기적인 주가 등락에 집착하지 말고 주식 자산의 장기 방향성을 보고 투자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