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비자는 뒷전인 '펀드 이동제'
지난 15일 증권사 콜센터에 전화해 “다른 회사로 펀드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예상대로 직원의 집요한 설득이 이어졌다. “옮겨 봤자 펀드 판매사에 내는 수수료(판매 보수)에 차이가 없어 돈을 아낄 수 없으며 이전 절차도 복잡하다”는 게 골자였다.

증권사 은행 등 펀드 판매회사 간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2010년 도입한 ‘펀드 판매사 이동제’가 유명무실하다. 펀드 이동제는 고객이 환매 수수료를 물지 않고 판매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를 보면 올 1~4월 펀드 이동제를 활용해 판매사를 바꾼 계좌는 월평균 569건이다. 전체 계좌(1426만개) 대비 0.004% 수준이다. 이마저도 작년 월평균 692건에서 17.8% 감소했다. 대다수가 펀드를 환매하기 전까지 판매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만족해서일까.

금융소비자연맹이 작년 말 실시한 소비자 설문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만이 가장 많은 것으로 펀드 등 투자상품(51.2%)이 꼽혔다. 만족도가 높은 금융상품 순서에서도 펀드(3.4%)는 꼴찌였다.

그럼에도 펀드 가입자들이 판매사를 바꾸지 않는 주된 이유는 ‘바꿔 봤자 기대할 게 별로 없어서’란 지적이다. 수익률이 갑자기 나빠져도 거액 자산가가 아니라면 금융회사 직원들이 전화 한 통 안 하는 게 일반적이다.

불합리한 규제와 복잡한 이전 절차도 빼놓을 수 없다. 관련 법에 따르면 펀드 계좌를 옮길 때 ‘클래스(종류)’를 달리할 수 없다. 예컨대 같은 펀드라도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A·C클래스를 온라인 전용인 E·S클래스로 갈아탈 수 없다. 판매사를 옮길 때 종전 금융회사에서 확인서를 받도록 만든 절차도 소비자 입장에선 번거롭다.

판매사 간 사후관리가 비슷하고 수수료도 같은데 소비자들이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펀드 계좌를 옮길 필요가 있을까.

금융당국은 도입 당시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자신했던 펀드 이동제가 왜 ‘찬밥’이 됐는지 잘 따져보기 바란다.

조재길 증권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