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꽤 알려진 중년 연예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 그분은 자신의 며느리가 무척 착하고 사랑스럽단다. 그런데 이유가 흥미롭다. 며느리가 ‘주식 투자 같은 것’을 하지 않아 착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을 도박과 같은 게임으로 보는 듯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를 잘 못해 재산 피해를 본 경험을 갖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주식 투자 때문에 잘못된 게 아니다. 투자가 아니라 주식을 통한 도박을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1년부터 장기간 뉴욕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다. 이 펀드를 통해 가입자들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 훨씬 잘 아는 수많은 국내 투자자는 손해를 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투자와 투기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좋은 주식을 샀다면 팔지 말라

개인투자자와 일부 기관투자가가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투자 철학의 부재다. 단기적인 투자 패턴이 문제라는 얘기다.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에 대해 ‘사고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식을 사자마자 언제 팔 것인지부터 고민한다. 주식을 사면 오래 갖고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는 평생 팔 필요가 없다. 자식한테 물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갖자.

주식을 사고파는 비율을 회전율이라고 한다. 코리아펀드를 운용한 15년간 회전율은 연간 15%를 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한 번 주식을 사면 7~8년씩 보유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기 투자를 할 때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사실 기업이 잘 되면 그 과실을 투자자가 나눠가질 수 있다. 실상은 이처럼 단순하다.

주식을 처분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10%나 20% 올랐기 때문이라면 곤란하다. 이유 없이 주가가 급등했든지, 아니면 경영진이 이상한 행동을 했거나 더 좋은 주식을 사기 위해 무조건 현금을 확보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매도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마켓 타이밍 투자법이다. 마켓 타이밍은 시장을 예측해 그 결과에 따라 투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할 때 주식 비중을 줄이는 식이다. 마켓 타이밍 투자자들은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주식 비중을 늘린다. 이런 방법은 그럴 듯하지만 추천할 만하지 않다. 대부분 투자자가 쉽게 빠질 수 있는 늪에 비유할 수 있다. 시장 예측은 매우 어렵다. 어차피 맞히기 어렵다. 불가능한 일을 놓고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수 있는 것이다.

○단기 예측, 누구도 맞힐 수 없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짧은 기간의 예측’은 무시할수록 좋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맞힐 수 없는 데 집중하기보다 투자한 기업에 신경쓰는 것이 낫다. 주식은 시장에 따라 샀다 팔았다 하는 게임이 아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투자돼 있어야 한다. 또 여유자금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기다릴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조건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 자산인 노동력과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일하도록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주식 투자다. 월급쟁이들은 퇴직연금에 가입했다면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월급의 일정 부분을 별도로 주식에 투자해 노후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에서 두터운 중산층이 생긴 배경에는 주식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자들은 두 가지 부류다.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가 아니면 주식을 많이 보유한 투자자다. 월급만 열심히 모아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은퇴 이후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

많은 월급쟁이가 주식을 살 돈이 없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대신 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 가방을 사며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투자할 돈이 없다는 것은 노후 대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당장 시작하자. 개인연금 펀드에 가입하고, 퇴직연금에서도 법이 허용한 최대 한도의 금액을 주식에 투자할 것을 추천한다. 원금보장형 상품을 선호하는 기업들도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투자를 통해 회사와 직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다.

○100~200배 오를 주식 또 나와

최근 국내 증시가 회복할 기미를 보이자 주변 사람들이 주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접근 방식이 흥미를 끈다. 한 부류의 사람은 ‘증시가 너무 많이 오른 것 아니냐’는 신중론을 편다. 다른 쪽에선 ‘조만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오랜 기간 주식 투자를 한 필자의 입장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기본적인 주식 철학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10년 후가 중요한데 지금의 주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은 주식을 샀어도 단기간에는 손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오르게 되어 있다. 이게 자본주의 원리다.

실제로 삼성전자 SK텔레콤 아모레퍼시픽 등의 종목은 과거와 비교할 때 100~200배씩 올랐다. 앞으로도 이런 주식은 많이 나올 게 분명하다. 장기 투자자만이 그 열매를 향유할 수 있다.

올해 증시가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대답은 간단하다. “모릅니다.” 정말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다만 5년에서 10년 뒤를 예측한다면 ‘낙관적’이라고 대답한다. 한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열악한 주식 투자 문화다. 주식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 투자와 투기를 혼동하는 문화, 퇴직연금의 50% 이상을 예금성 자산에 묻는 반면 주식에는 5%밖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한국 증시의 호재다. 앞으로 증시에 유입될 자금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서다.

대부분 월급쟁이는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떤 방식인지에도 관심이 없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진다. 매일 쏟아지는 국내 경제에 대한 매스컴의 부정적인 뉴스들은 한국 주식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일 뿐이다.

둘째, 주식 가격이다. 굳이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투자하고 싶은 한국 기업들은 얼마든지 있다. 주식 가격에 대한 부담도 없다. 다만 패러다임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의 확산, 중국의 부상 등 대내외 환경 변화가 한국 기업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알던 기업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회사들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원금보장’은 허울 좋은 감옥

정부가 최근 들어 금융 개혁을 중요한 아젠다로 생각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주식시장의 장기 호황을 향유해 왔다. 한국도 그렇게 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한국 금융이 한 단계 올라서려면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하다. 금융 개혁의 시작은 장기 투자 문화의 정착이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 혼자선 힘들다. 모든 정부 부처가 공동 목표를 정해야 한다. 뿌리 깊은 관행을 깨려면 ‘생각을 개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많은 기관투자가가 장기 투자를 하고 싶어도 단기 평가시스템이나 감사 때 받을 지적이 두려워 단기로 투자한다. 이런 측면에서 선진국과 같은 투자의 독립성이 절실하다. 코스피지수가 3000을 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처럼 지속적인 상승이 가능할 것이냐다. 그렇게만 된다면 코스피지수 역시 장기적으로 ‘1만’ 시대를 맞을 것이다.

일본이 과거 20여년간 침체를 경험한 이유는 금융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서다. 일본 국민은 자산을 은행 예금에 넣어놨을 뿐 투자하길 두려워했다. ‘원금보장’이란 프레임에 갇혀 20년 넘게 허송세월한 것이다. 은행 자산은 가장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위험한 자산’이다. 자본이 전혀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이 있다. 안타깝게도 원금보장형 상품이 대세를 이룬다. 당연히 좋은 투자 철학이라고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위험-고수익’은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위험을 회피하면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단기간의 원금 손실은 무시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은퇴 시기가 많이 남은 사람들은 크게 고민할 이유가 없다. 길게 보면 주가는 오르게 돼 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를 통해 자신들의 은퇴자금이 계속 일하도록 만들 것인가, 아니면 원금보장이란 허울 속에서 ‘예금 감옥’에 가둬놓을 것인가. 양쪽 자산의 차이는 세월이 흐를수록 커질 것이다. 한 번 벌어진 격차를 결코 뒤집을 수 없다.

존 리 <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john.lee@merit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