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한양도성] '김종서 장군 집터' 자리잡은 농협은행…한양도성처럼…"서민금융 버팀목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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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재 연계 금융서비스
농경문화 보존에도 앞장
농경문화 보존에도 앞장
서울 지하철 2호선 서대문역에 자리잡은 농협은행 본사는 은행 역사만큼이나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여진족 토벌에 앞장섰던 김종서 장군의 집터가 이곳에 있었다. 근처에는 서울 남산에서 시작해 낙산과 북악산, 인왕산을 잇는 한양도성 자락이 이어진다.
농협은행 임직원은 한양도성 축성이 외세 침략으로부터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농협은행 터는 국가 안위를 지키려는 고결한 정신이 깃든 곳이라고 자랑한다. 농협은행이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금융회사로서 이익을 모두 농민에게 돌려준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농협은행 본점 옆 농업박물관 앞에는 ‘김종서 장군 집터’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좌의정 김종서가 수양대군(세조)의 기습을 받은 자택이 있던 곳이다. 농협은행 본관 앞마당에는 500여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종서가 철퇴를 맞아 죽은 후원에 있던 나무라고 전해진다. 원산지가 중국으로 중국 사신들이 기나긴 사행(使行)길에 회화나무를 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얘기도 있다.
농협은행이 농협중앙회 신용사업부문으로 있던 1992년 농협중앙회는 김종서 집터에 표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했다. 자체적으로 각종 고증자료를 통해 김종서의 생가 터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고증을 거치기도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1907년 농민들이 세운 풀뿌리 서민신용금융기관을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김종서 집터를 잘 보존하는 것은 농협은행 역사를 보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 규칙 공포와 함께 설립된 지방금융조합이 시작점이다. 일종의 서민신용금융기관으로서 그 조직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1913년에는 조합 수 209개, 조합원 수는 8만1000여명에 이르렀다.
이후 농협신용부문은 식산은행(1918년 설립 후 1954년 산업은행으로 전환)과 농업은행(1956년 설립후 1961년 중소기업은행과 농협으로 분리) 등을 거쳐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전국 읍·면 단위에 설립된 협동조합과 합쳐져 농협중앙회로 진화했다. 1961년 8월15일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돼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농업은행이 갖고 있던 대도시 점포 중 한 곳을 뺀 36곳을 기업은행에 넘겼다. 대도시에 농협 점포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협은행 임직원들이 얽히고설킨 농협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농협의 뿌리는 금융사업’이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농협은행은 이처럼 오래된 역사만큼 농협중앙회와 함께 다양한 문화재 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농업박물관에서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특별전시를 갖는 게 대표적인 예다.
지역문화재와 연계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금융소비자가 농협은행에서 세계자연유산 사랑카드를 발급하면 삼양선사유적지와 만장굴, 성산일출봉, 비자림 등 12개 문화재 관람 때 본인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사랑카드는 전체 이용액의 일부를 세계문화유산 관리기금으로 출연하는 공익 카드 상품이다.
2013년에는 대장경세계문화축전조직위원회와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 공식 후원은행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당시 농협은행은 전국 지점망을 통해 대장경축전 입장권 예매와 다양한 홍보활동에 협력했다.
각종 국가 행사 때 기념주화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예약판매한 기념주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교황 방한 기념주화는 은화 1종(액면가 5만원)과 황동화 1종(액면가 1만원) 등 총 2종으로 구성됐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농협은행 임직원은 한양도성 축성이 외세 침략으로부터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농협은행 터는 국가 안위를 지키려는 고결한 정신이 깃든 곳이라고 자랑한다. 농협은행이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금융회사로서 이익을 모두 농민에게 돌려준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농협은행 본점 옆 농업박물관 앞에는 ‘김종서 장군 집터’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좌의정 김종서가 수양대군(세조)의 기습을 받은 자택이 있던 곳이다. 농협은행 본관 앞마당에는 500여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종서가 철퇴를 맞아 죽은 후원에 있던 나무라고 전해진다. 원산지가 중국으로 중국 사신들이 기나긴 사행(使行)길에 회화나무를 보며 향수를 달랬다는 얘기도 있다.
농협은행이 농협중앙회 신용사업부문으로 있던 1992년 농협중앙회는 김종서 집터에 표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했다. 자체적으로 각종 고증자료를 통해 김종서의 생가 터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고증을 거치기도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1907년 농민들이 세운 풀뿌리 서민신용금융기관을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김종서 집터를 잘 보존하는 것은 농협은행 역사를 보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 규칙 공포와 함께 설립된 지방금융조합이 시작점이다. 일종의 서민신용금융기관으로서 그 조직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1913년에는 조합 수 209개, 조합원 수는 8만1000여명에 이르렀다.
이후 농협신용부문은 식산은행(1918년 설립 후 1954년 산업은행으로 전환)과 농업은행(1956년 설립후 1961년 중소기업은행과 농협으로 분리) 등을 거쳐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전국 읍·면 단위에 설립된 협동조합과 합쳐져 농협중앙회로 진화했다. 1961년 8월15일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돼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농업은행이 갖고 있던 대도시 점포 중 한 곳을 뺀 36곳을 기업은행에 넘겼다. 대도시에 농협 점포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협은행 임직원들이 얽히고설킨 농협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농협의 뿌리는 금융사업’이라고 말하는 배경이다.
농협은행은 이처럼 오래된 역사만큼 농협중앙회와 함께 다양한 문화재 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농업박물관에서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특별전시를 갖는 게 대표적인 예다.
지역문화재와 연계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금융소비자가 농협은행에서 세계자연유산 사랑카드를 발급하면 삼양선사유적지와 만장굴, 성산일출봉, 비자림 등 12개 문화재 관람 때 본인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세계자연유산사랑카드는 전체 이용액의 일부를 세계문화유산 관리기금으로 출연하는 공익 카드 상품이다.
2013년에는 대장경세계문화축전조직위원회와 2013대장경세계문화축전 공식 후원은행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당시 농협은행은 전국 지점망을 통해 대장경축전 입장권 예매와 다양한 홍보활동에 협력했다.
각종 국가 행사 때 기념주화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예약판매한 기념주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교황 방한 기념주화는 은화 1종(액면가 5만원)과 황동화 1종(액면가 1만원) 등 총 2종으로 구성됐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