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빅브러더' 놓고 한은·거래소·예탁원 3파전
한국은행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이 올해 도입할 예정인 장외파생상품 거래정보저장소(TR)의 운영권을 놓고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자율스와프(IRS) 등 국내 장외파생상품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움켜쥘 수 있고, 업무영역과 조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고 신흥국 등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할 수 있는 것도 국내 TR 운영권이 주목받는 이유다.

◆금융위, 연내 TR 기관 선정

19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TR 도입과 관련해 해외 사례를 검토 중”이라며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올해 안에 TR을 설립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달 금융감독원과 관련 업계·연구원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도입 방안을 논의했다.

한은과 거래소 예탁결제원이 TR을 운영하겠다는 출사표를 냈다. 한은은 장외파생상품 거래내역 등을 시차를 두고 금융회사에서 보고받고 있다. 외환전산망을 운영하고 있어 추가 설비 투자가 필요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거래소는 장외파생상품 청산결제소(CCP)를 운영 중이어서 관련 거래 정보를 취합 중이고 장내파생상품 정보를 이미 갖고 있다며 운영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예탁결제원은 TR이 원래 예탁기관의 업무영역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관련 데이터 수익사업 가능

세 기관이 서로 TR을 유치하려고 뛰는 것은 TR을 운영함으로써 얻는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TR을 운영하면 장외파생상품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는 ‘빅브러더’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선 IRS, 차액결제선물환(NDF) 등 장외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모든 금융사와 수출기업 등이 거래 상대방, 상품 거래 내역 등 상세 정보를 늦어도 거래 뒤 3거래일 내에 TR에 보고한다. TR은 이를 분석, 부도 등의 위험 가능성과 부당거래행위 여부 등을 파악해 금융당국에 알린다. 해외 TR과 상호 정보교환 계약을 체결하면 외국 시장 정보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해외 일부 TR은 수집한 장외파생상품 정보를 토대로 데이터사업을 벌여 이익도 올린다. 미국에서 TR을 운영하는 예탁청산기관 DTCC는 2014년 3253만달러(약 36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또 TR 운영기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조직을 키우고 업무영역을 넓힐 수 있다. 이 밖에 해외 TR과의 협업을 통해 국제 위상이 높아지는 점, 향후 신흥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TR과 관련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DTCC는 본국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본 호주 싱가포르의 TR을 운영 중이다.

◆미국에선 네 개 TR 운영 중

해외에선 유수의 글로벌 거래소, 중앙은행, 금융정보업체들이 TR을 운영하며 경쟁 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으로 11개국에서 25개 TR이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선 DTCC, 시카고상업거래소 등 글로벌 거래소의 자회사 두 곳, 블룸버그 자회사 등 네 곳이 정부 허가를 받아 TR을 운영 중이다. 유럽연합(EU)엔 여섯 개 TR이 있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홍콩 브라질 등에는 정부 허가를 받은 TR이 한 곳씩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내 시장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일단 한 곳의 TR을 선정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수익사업 허용 범위 등에 대해선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TR

장외파생상품 거래정보저장소(Trade Repository). 장외파생상품 거래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보관·분석하고 이를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거래정보 등록기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에서 TR 역할을 했던 DTCC가 리먼브러더스의 부도 위험을 시장에 알리면서 중요성이 부각됐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