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수출 한국이 위험하다
“최근 현지공장 등 해외 진출이 많았던 휴대폰·자동차 업종 등은 국내 공장 생산을 확대해 달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수출입 모두 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며 한 얘기다. 수출 부진을 타개할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데 따른 압박감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런다고 어느 대기업이 당장 국내 생산을 늘릴 수 있겠나. 해외 생산시설을 뜯어 오기라도 하라는 건가. 정부는 대기업이 무슨 요술방망이라도 가진 줄 아는 것 같다. 정부가 임금 올리라면 뚝딱 올리고, 국내 생산을 늘리라면 뚝딱 늘리는 그런 방망이 말이다.

대기업 국내 생산 늘리라고?

휴대폰이든 자동차든 생산의 무게중심이 해외로 옮겨간 지는 이미 오래다.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요인이 크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굳이 국내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노동, 입지, 환경, 세금 등 규제나 비용 측면에서 무엇 하나 내세울 메리트가 없다. 최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유턴 정책이다 뭐다 파격적 변화라도 도모한다. 하지만 우리의 유턴 정책은 있으나 마나다.

더구나 윤 장관이 예로 든 휴대폰, 자동차가 어떤 상황인가. 한눈 팔다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글로벌 기업 간 사활을 건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대기업이 해외 생산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으면 지금의 국내 생산도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해외 생산이 국내 수출을 떠받친다’는 역설적 가설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면 뭐하나. 더 큰 일은 오는 버스조차 놓치게 생겼다는 거다. 엊그제 새누리당-전국경제인연합회 정책 간담회에서 30대 기업 임원들이 “신사업 추진을 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규제 때문에 빅데이터도, 수소차도, 에너지저장장치(ESS)도, 모바일 헬스케어도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이리되면 대기업은 신사업마저 밖으로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생산 공동화’에 ‘연구 공동화’까지 초래되면 미래 수출의 씨가 마를지 모른다.

‘안방에서 놀자’는 中企정책

산업부는 수출 중소기업을 대폭 늘리겠다지만 이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어떤 대책을 내놔도 중소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불행히도 국내 중소기업 정책은 해외가 아니라 ‘안방에서 놀자는 주의(보호주의)’다.

선진국의 중소기업 정책이 ‘경쟁촉진적’이라면 우리는 철저히 ‘경쟁제한적’이다. 중소기업 정책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경쟁을 제한해야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대기업의 공공사업 입찰 제한 등의 논리가 다 그렇다. 심지어 정부 연구개발(R&D)조차 대기업을 몰아내고 중소기업 전용 무대로 만들자는 것 아닌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하나의 시장으로 간다는 마당에 ‘내수·수출 균형’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하물며 ‘안방=중소기업’이 말이 되나. 중소기업 정책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경쟁촉진적’으로 가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수출 중소기업을 늘리기는커녕 안방마저 해외 업체에 내주고 말 거다. ‘대기업 규제’ ‘중소기업 보호’라는 기업 정책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 수출 한국의 신화가 여기서 끝나길 원치 않는다면.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