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올인하는 중국
전자 완제품산업 커질수록 반도체 수입 급증해 고민
"2020년 세계 1위 기술확보"
한국, 전략적 대응 필요
고급인력 유출 막고 차세대 기술 개발 시급
"제휴관계 구축도 검토해야"
중국 최대 액정표시장치(LCD) 업체인 BOE(京東方·징둥팡)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로 하면서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BOE가 시장을 어느 정도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메모리 반도체 진출 공식화
중국은 그동안 전자 완제품 분야에서 한국을 추격해 왔다. 그 결과 하이얼, 레노버, 화웨이 등 전자업체들이 급부상했다. 삼성과 LG의 시장도 잠식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는 완제품을 키울수록 딜레마가 생겼다. 완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입량이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며 ‘2020년 세계 1위 수준 반도체 기술 확보’를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은 당초 연산 등을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집중했다. 중국에는 600개가 넘는 팹리스(시스템 반도체 설계업체)와 세계 5위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SMIC가 있어 이들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메모리 분야에는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워낙 메모리 쪽에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난달 중국 서밋뷰캐피털컨소시엄이 미국 메모리(D램) 설계업체인 ISSI를 약 7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계기다. 뒤이어 BOE가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입은 공식화됐다. BOE는 ISSI와 협력해 D램 쪽에 먼저 진출할 공산이 크다.
메모리 시장 잠식 얼마나
BOE가 최소 10년 내 한국 업체를 제치고 메모리 시장 세계 1위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메모리는 완제품처럼 베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인 10㎚(1㎚=10억분의 1m)대 메모리를 개발하기 위해선 제조기술은 물론 반도체 소재에 대한 원천기술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BOE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본격화하면 한국 업체들의 시장이 어느 정도 잠식당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BOE의 여건도 괜찮은 편이다. 지난 10여년간 LCD 사업을 하며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2007년 메모리 업체들이 벌인 ‘반도체 치킨게임’ 때 파산한 일본 엘피다 등의 기술자 상당수가 중국으로 넘어간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전문가들도 쉽게 모을 수 있다. D램 생산업체인 대만의 난야 등과 협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가 합쳐질 경우 반도체 업계에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메모리 업체가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인력 유출에 유의하고 차세대 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급 인력이 넘어갈 경우 단기간에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며 “STT-M램(D램과 낸드플래시를 합친 것) 등 차세대 기술도 여유 있을 때 빨리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경쟁자가 아닌 전략적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 전문가인 허성무 KOTRA 다롄무역관 부관장은 “중국 업체들과 적대적인 경쟁을 하다가 퀄컴처럼 과징금을 받거나 중국에 있는 삼성과 SK하이닉스 공장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차라리 기술이전을 하고 로열티를 받아 이 돈으로 미래 사업을 개발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