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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칼럼]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대한 인식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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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부진이 불황의 원인이란 오진
    돈 풀어 스스로 거품 키우지 말고
    망가진 실물부문 정리하는 게 먼저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다산칼럼]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대한 인식 오류
    불황과 디플레이션은 악(惡)인가. 이를 벗어나기 위한 금리 인하가 적절한 해법인가. 이는 2008년의 금융위기에 대한 원인 진단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이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그런 설명은 도외시되고 지금은 불황과 디플레이션을 심화시키는 정책들만 범람하고 있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주택 소유율 제고 정책에서 비롯됐다. 이후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많은 돈이 풀린 것을 사람들이 미래 지향적이 돼 소비를 줄이고 저축은 늘리면서 이자율이 떨어진 것으로 착각한 기업가들의 과오투자(過誤投資)에서 발생했다.

    소비재를 만드는 생산 과정은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 최종 소비재에서 상대적으로 먼 단계에서 사용되는 자본재를 고차재(高次財), 가까운 단계에서 사용되는 자본재를 저차재(低次財)라고 한다. 예를 들면 원유 채굴을 위한 자본재는 상대적으로 고차재며 휘발유 제조를 위한 자본재는 저차재다. 이제 풀린 돈이 기업에 대출되면 이전에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없었지만, 이제는 새롭게 추가되는 고차재 산업에 투자 자원이 몰리고 생산 단계가 많아져 생산구조가 길어진다. 새로운 고차재 산업의 물가가 올라가고 투하된 자원이 임금과 임대료 등으로 가계에 흘러감에 따라 소비도 증가한다. ‘붐(boom·호황)’이다.

    소비 증가에 따라 투자 자원은 고차재 산업에서 저차재 산업으로 다시 이동하고, 저차재 산업에 자원을 빼앗긴 고차재 산업은 자원 부족 상태에 처하게 된다. 투자를 뒷받침하는 저축이 증가하지 않았는데도 풀린 돈을 저축 증가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과오투자 기업은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고차재 산업에서 들어오던 가계소득도 감소한다. ‘버스트(bust·거품붕괴)’다. 그래서 불황은 소비재 산업이 아니라 자본재 산업에서 시작되고, 따라서 소비 부진이 불황의 원인이라는 진단은 틀렸다.

    불황은 과오투자로 인한 시장 왜곡을 고치라는 신호라는 점에서 악이 아니다. 불황으로 접어들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공급을 줄이지 않더라도 금융회사들이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통화 공급이 줄고 이자율도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과오투자 기업들이 청산된다. 또 소비자는 물가가 더 내려갈 것으로 기대해 소비를 줄이고, 채무자는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처분하고 지출을 줄인다. 기업도 부도를 우려해 투자에 신중을 기한다. 불황 시에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는 이유다.

    지출이 줄면서 일반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디플레이션인데, 이는 경제회복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역시 악이 아니다. 일반 물가가 떨어지고 과오투자를 범한 고차재 산업이 정리되면서 고차재 산업의 물가가 저차재 산업의 물가보다 더 크고 빠르게 떨어진다. 이에 따라 생산구조가 소비자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다시 맞춰지면서 디플레이션이 멈추고 경제는 회복된다. 임금이 신축적으로 조정되면 회복은 더욱 빨라진다.

    지금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이유는 금융당국이 다시 저금리로 돈을 풀어 과오투자 기업을 구제하려고 함으로써 시장의 청산 과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국채시장을 구제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시행했고 일본은 1985년의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강세로 수출이 부진하자 내수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계속 돈을 풀었다.

    요컨대 저금리와 돈 살포가 경제 위기와 멈추지 않는 불황 및 디플레이션의 원인이다. 이른바 통화전쟁도 망가진 실물부문을 방치한 채 돈을 풀어 환율을 조작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주요 각국이 돈 풀기를 멈추고 실물부문이 바로잡히도록 하지 않는 한, 또 운 좋게도 실물부문이 독자적으로 회생하지 않는 한, 불황과 디플레이션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이 독자적 묘책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경기 부양 효과가 없는 초저금리로 스스로 거품을 만들 이유는 없다. 지금은 돈 풀기를 중단하기 위한 각국 간 정책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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