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등장하지 않는다. 최고 전성기의 연예인도 없다. 출연진도 달랑 세 명에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다. 소재 역시 특별한 것이 없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막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슴을 졸이게 하는 극적 긴장감도 주지 않는다. 많은 연예인이 짓까불고 떠드는 작위적인 요란함도 없다. 도시적인 기준의 엔터테인먼트 여건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 무료한 환경에서 그들은 그냥 세끼 밥만 지어먹는다. 흔한 마트에서도 아니고 그저 밭에서, 바다에서 구한 재료로 밥만 해 먹는다. 그런데 소위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 됐다. tvN의 ‘삼시세끼’ 얘기다.

방송사 간 예능 프로그램 경쟁은 치열하다. 사활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간대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포진시켜 맞불을 놓고, 비슷한 포맷을 베낀다는 비난에도 더 인기 높은 아이돌과 더 많은 물량을 투입하고, 방송 수위를 넘나드는 요란한 내용으로 시청률 경쟁을 해왔다. 그러다가도 시청률이 떨어지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이것이 예능 프로그램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삼시세끼는 이런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 다름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 제한된 자원, 훨씬 많은 것을 갖춘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 등의 관점에서 보면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 기업의 그것과 닮았다. 이런 닮은 환경에서 삼시세끼는 대체 어떤 다름으로 승리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없을까. 일단 사람관리 측면만 들여다보자.

삼시세끼 연출자 나영석 프로듀서(PD)는 KBS의 간판 PD였다. 사활을 걸고 경쟁하던 주말 예능 시간대에서 몇 년 동안 KBS의 독주를 이끌었다. 그러던 그가 소위 번아웃(burnout)에 빠졌단다. 그가 이끌던 70~80명의 인원 모두가 그랬단다. 그래서 경영진에 제안을 했단다. 모두가 지치고 소재도 빈궁해졌으니 3개월이나 반 년만 쉬고 하겠다고. 그러나 KBS는 거절했다. 가동률을 극대화해 그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KBS를 사직했다. 자신의 창의성을 우선시해주는 유연한 분위기의 조직을 찾아서 KBS보다 작은 조직으로 이직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지금 KBS가 부러워하는 대박 작품을 연거푸 쏟아내고 있다.

경영자들은 직원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경쟁우위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과 달리 창의성을 짓밟는 행위를 하곤 한다. 창의성은 ‘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다. 그 환경을 경영자가 만든다. 세계적으로 가장 창의적인 기업이라는 구글만 보더라도 그렇다. 구글 경영자는 70-20-10 룰이라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 환경 속에서 구글은 창의적인 제품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창의적인 기업의 경영자 그 누구도 시간적인 가동률을 생산성으로 등식화하지 않는다.

경영자가 직원을 부른다. 씨앗을 주면서 빠른 시간 내에 창의적인 열매를 맺게 하라고 지시한다. 직원은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토양, 일조량, 강수량은 물론 자신의 역할까지 감안해 선택한 장소에 씨앗을 묻고 돌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며칠 후 경영자가 그를 부른다. 씨앗이 잘 크고 있느냐고 묻는다. 상황을 대답한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경영자는 그를 계속 부른다. 아직 싹도 나지 않고 있는데 대체 뭐하느냐고 닦달한다. 직원은 압박에 시달린다. 자신이 구상했던 창의적인 방법은 내팽개친다. 그리고 매일 땅을 파고 싹을 본다. 과정은 매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땅 속의 씨앗은 결국 죽고 만다. 그리고 직원은 그 조직을 과감히 떠나고 만다.

나영석 PD는 케이블 TV로 옮긴 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믿고 환경만 조성하는’ 연출을 하고 있다. ‘꽃보다’ 시리즈가 그렇고, ‘삼시세끼’가 그렇다. 그런데 모두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대박을 꿈꾸면서 그리고 그 대박이 창의성에서 나온다고 하면서 우리 경영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박기찬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