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 상장사인 한 건설기계업체의 IR(기업설명회) 담당자는 다음달 개최 예정인 주주총회로 머리가 아프다. 올해부터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를 활용하려면 전자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감사 선임 등이 걸려 있어 섀도보팅을 안 쓸 수 없는 처지다. 막상 전자투표를 하려고 하니 경영진은 ‘온라인 주총꾼들이 몰리는 게 아니냐’며 대책을 주문하고, 주주들은 ‘투표 참여를 하려고 하니 상세 정보를 제공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주총이 더 힘들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섀도보팅 유예받으려 전자주총 도입했지만…상장사 여전히 골머리
○상장사 “일단 섀도보팅 하고 보자”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상장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인터넷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올 들어 24일까지 한국예탁결제원과 전자투표 계약을 체결한 상장사는 총 203개사다. 2009년 도입 이후 이 제도를 실제 주총에서 활용한 곳은 단 한 회사뿐이었다.

올 들어 전자투표 붐이 일어난 것은 작년 말 개정된 자본시장법 때문이다. 새 법은 작년 말로 폐지가 예정돼 있던 섀도보팅을 3년간 조건부로 연장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회사만이 섀도보팅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섀도보팅이 폐지되면 당장 보통결의 요건(전체주주의 25% 찬성+주총 참석주주의 50% 찬성)을 채우기 힘든 상장사들은 전자투표제를 도입, 급한 불을 끄려고 하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소액주주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기 때문에 섀도보팅 없이는 대주주 지분이 3%로 제한되는 감사 선임 등의 안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랩 진양홀딩스 코아스 예스이십사 한화케미칼 경동나비엔 등 20여개 기업이 이번 주총에서 감사 선임을 앞두고 전자투표를 서둘러 신청했다.

○“요식행위” vs “주총문화 변화”

허울뿐인 전자주총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많다. 코스닥에 상장돼 있는 중소제약업체 관계자는 “주주들이 전자투표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회사 측의 홍보방안도 마땅치 않다”며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자투표를 시행하기 위해 한국예탁결제원과 전자투표 위탁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주총 2~3주 전에 이용 신청을 하고, 주주들에게 공시나 우편물 등을 통해 권유해야 한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연령대가 높은 주주가 많아 인터넷 투표 참여율이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는 등에 떠밀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다음카카오 중앙백신 한화투자증권 등 일부 기업은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코스닥 상장사 중앙백신 관계자는 “실제 주총장을 찾는 주주들이 많지 않아 전자투표를 통해서라도 주주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생각”이라며 “전자투표는 주주와 소통할 수 있는 주요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전자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주주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열린 주총’을 추진하고 있다”며 “미리 주주 대상 기업설명회를 실시하는 등 전자투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은지/이고운/허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