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은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상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편리하다. 대출받기도 쉽고 대출금리도 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나 개인 모두 신용등급을 좋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부 은행에서 신용등급이 높은 중소기업의 대출금리가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보다 높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신용등급 따로, 대출금리 따로’ 계산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신용등급 좋은데 이자 더 받는 이상한 은행들
○결과적으로 금리 역차별

15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해 10~12월 신용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가운데 신용등급 최하위인 7~10등급 기업에 평균 연 9.56%의 금리를 적용했다. 하지만 6등급인 중소기업에는 이보다 0.8%포인트 높은 연 10.36%의 이자를 물렸다. 신용등급이 더 높은 중소기업의 금리가 오히려 더 높은 것이다.

기업은행과 농협은행도 마찬가지다. 기업은행이 7~10등급 기업에 적용한 금리는 연 6.78%인 반면 6등급 기업은 연 9.19%였다. 농협은행은 7~10등급 기업의 금리가 연 6.02%, 6등급은 연 7.40%였다. 한국씨티은행과 부산은행에서는 4등급과 5등급 간, 경남은행과 대구은행에서는 1~3등급과 4등급 간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금리 역전은 대출금리를 구성하는 요소(기준금리+가산금리) 중 가산금리에서 발생했다. 기준금리는 신용등급이 나쁠수록 높아졌지만, 가산금리는 거꾸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의 신용대출 기준금리는 6등급이 연 2.14%, 7~10등급이 연 2.16%였다. 하지만 가산금리는 6등급에 연 8.22%, 7~10등급에 연 7.40%가 적용됐다.

해당 은행들은 신용등급 외에 다른 조건이 금리 산정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이라도 금리 변동주기가 짧으면 금리 산정 비용에 따른 가산금리가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변동금리에 따른 위험을 차입자가 나눠 부담하는데도 이자를 더 물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대출금리 산정기준 분명히 해야

신용대출에서만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증서담보대출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증비율이 높아질수록 대출금리가 떨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0~12월 90% 보증을 받은 중소기업에 연 3.88%의 금리를 적용하고 100% 보증서를 갖고 온 중소기업에는 연 4.01%를 물렸다. 해당 중소기업은 100% 보증서를 내밀고도 이자를 더 낸 것이다. 농협은행은 같은 기간 보증비율 85% 기업에 연 4.02%를 적용하고 보증비율 90% 기업에는 연 4.09%를 받았다.

‘뜨는’ 업종이면 신용등급이 낮아도 감면 금리를 높게 적용해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이 경우에도 신용등급이 높은 중소기업으로선 그렇지 않은 곳보다 이자를 더 내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7~10등급인 경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 금리를 깎아준 경우도 포함됐다.

다만 보증서 외 공장 토지 등 물적담보대출은 신용등급 간 금리 역전 현상이 없었다. 거꾸로 해석하면 여전히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신용등급을 합리적으로 매기는 것이 첫 번째고, 등급이 좋으면 반드시 금리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