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창업하지 않았다면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를 뚫지 못했을 겁니다.”

엑세스바이오(사장 최영호·사진)는 세계 말라리아 진단키트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업체다. 한국 출신 연구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회사를 세운 후 2013년 국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독특한 이력의 회사다. 주력 분야도 열대성 기후 국가와 아프리카가 주요 발병지인 말라리아 진단이다. 최영호 사장은 “말라리아는 해마다 100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인데도 2000년 초반까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의약품 개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라며 “아무도 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빈손으로 오른 미국행

고려대 농생물학과와 KAIST를 나와 1987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제일제당 종합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간 최 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 출장 갔다가 진단시약 분야 권위자인 강제모 박사를 만난 것. 강 박사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강 박사가 세운 PBM이라는 회사에서 13년간 근무한 최 사장은 2002년 뉴저지에 에이즈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엑세스바이오를 세웠다. 미국에서 닷컴버블이 막 무너진 후여서 사업자금을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돈 구할 데가 없었던 최 사장은 친인척과 교회 지인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30만달러를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2013년 상장한 것은 초기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도 있다”며 “당시 1만달러를 투자했던 교회의 한 지인은 지난해 주식을 처분해 100만달러 정도를 만들어 자녀에게 집을 사줬다”고 전했다.

○우연히 시작한 말라리아 진단사업

말라리아 진단사업은 애초 생각지도 못했던 사업 아이템이었다. 친구처럼 지내던 의사 출신 미국 사업가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당시 말라리아 진단키트는 인도의 한 업체가 유일하게 생산했는데 성능이 형편없었다. 미국인 사업가는 “엑세스바이오 기술력이면 충분할 것”이라며 개발을 권유했고, 최 사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제품을 만들어놓고도 한국인 출신이 이끄는 바이오벤처가 만든 제품으로 WHO를 뚫기는 쉽지 않았다. 최 사장은 “국경없는의사회에 시제품을 납품하도록 지인이 다리를 놔주고 이를 계기로 제품력이 알려지면서 진단키트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부터 진단키트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2011년 170억원에서 2013년에는 연매출 400억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매출의 90%가 말라리아 진단시약·키트에서 나온다.

○오지에서 찾은 아이템으로 제2 도약

엑세스바이오는 올해부터 WHO에 ‘G6PD(적혈구 효소결핍으로 인한 빈혈)’ 진단키트 납품을 시작하며 또 한 차례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G6PD는 중동이나 열대지역에서 많이 생기는 일종의 유전병이다. 이 질병이 있는 환자가 말라리아 약을 먹으면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진단하는 게 필수다. 최 사장은 “혈액을 채취해서 오랫동안 검사해야 가능했기 때문에 저개발 국가에서는 사실상 진단이 어려웠다”며 “처음으로 간편한 진단키트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라리아 진단시약보다 다섯 배가량 비싸기 때문에 수익성도 높다. 관련 진단키트 세계 시장은 4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올해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는 것도 새 진단키트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최 사장은 자궁경부암 진단시약 부문도 3~4년 내 주력 제품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했다.

김형호/조미현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