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국제시장, 옥에 티
“뜯겨 나간 닭 껍질들 찢어진 지도 같다/전쟁터 총기되어 쌓여가는 잔뼈 조각/

수정동 날선 달동네 퀭한 바람 토한다”(‘산복도로 통닭집’ 중)

지난해 계간지 나래시조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황란귀 씨(23)의 시조 한 대목이다. 전쟁이나 가난과는 거리가 먼 20대의 감성에도 부산 산복도로는 좋은 소재다. 산허리(山腹) 즉, 산기슭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좁디좁은 도로 옆에는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대충 기름칠을 한 천막조각들로 지붕을 삼았고, 벽이랍시고 얼기설기 널빤지로 안팎을 구분했다. 드문드문 있는 수도와 공동화장실에는 항상 긴 줄이 북새통이었다.

부산 6·25전쟁 가난 등의 단어가 나오면 국제시장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산복도로다. 그런데 영화 ‘국제시장’에는 산복도로 비슷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부산을 잘 아는 중장년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감독네 집은 그때 잘살았던 모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국제시장’이 지난 주말 누적 관객 1300만명을 넘으며 역대 2위 흥행기록을 세웠다. 외화를 포함해도 ‘명량’ ‘아바타’에 이어 3위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퉈 이 영화를 관람했고 11일(현지시간)에는 미국 워싱턴DC 인근 극장에서 6·25참전 노병 재미동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상영회도 열 예정이다. 국제시장은 집단기억의 끈을 되살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했다. 그러나 실화적 요소가 있는 만큼 좀 더 디테일에 충실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영화는 주인공 덕수가족이 흥남부두에서 어렵게 부산으로 탈출, 피란하는 장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를 담고 있다. 그런 만큼 부산과 대한민국의 변화도 더 여실하게 담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중장년들은 어린 시절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사망한 안타까운 기억들을 많이 갖고 있다. 독일 광부도 아무나 가기는 어려웠다. 대졸 학력이 넘쳤다. 1963년 파독광부 모집에는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 9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쌀 한 가마로 갈 수 있던 곳이 아니었다.

하기야 그런 너무도 어려웠던 시절의 장면이 많았더라면 요즘 세대는 오히려 거부감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갈치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나 좁고 비탈진 골목길에서의 연애 이야기라도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상미도 더 뛰어났을 것이다. 굳이 흠집이라도 잡아보느라 하는 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