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전은 지금까지 레오폴트 미술관이 해외에서 선보인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에곤 실레의 작품 46점이 전시된 건 그간 아시아에선 볼 수 없었던 광경이죠. 놓칠 수 없는 ‘일생에 한 번 있는 전시’(Now or Never)인 겁니다.”‘전쟁은 끝났고, 나는 이제 가야 해. 내 그림들은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릴 거야.’ 에곤 실레는 스물여덟의 짧은 생을 마치기 직전 이런 말을 남겼다. 언젠가 자신의 그림을 매개 삼아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적 교류가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었다. 최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비엔나전) 특별전에서 만난 한스 페터 비플링어(56)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장은 실레의 마지막 한 마디를 상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서울에서 실혔됐어요.”미술사를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 여럿 있다. 190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이 그중 하나다.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청춘의 초상을 그린 에곤 실레, 표현주의 대가 오스카 코코슈카 같은 거장들이 ‘빈 분리파’라는 이름으로 세기말의 불안과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예술로 분출했다. 정확히 한 세기가 흘러 2001년 세워진 레오폴트 미술관은 이 시기 빈의 예술혼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220여 점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비롯해 동시대 거장들의 명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다. 미술관 핵심 컬렉션을 옮겨 온 비엔나전이 지난달 30일 개막 이후 매일같이 미술애호가의 발길로 붐비는 까닭이다.비엔나전은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역대 국내 전시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찰리 푸스(Charlie Puth)가 또다시 한국에서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약 1년 만에 국내 팬들과 재회한 그는 전매특허인 청명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2만여명의 관객을 끌어안았다.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띤 얼굴, 관객을 향한 사랑 고백, 별이 박힌 듯 다정한 눈빛에 현실의 추위를 잊고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90분이었다.찰리 푸스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내한 콘서트를 개최했다.찰리 푸스의 내한은 지난해 10월 이후 약 1년 2개월 만이다. 2016년 2000석 규모의 예스24라이브홀에서 한국 팬들과 첫 만남을 가졌던 그는 2018년 8500명이 모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노래한 데 이어 지난해 KSPO DOME(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1일 1만5000명, 3일간 총 4만5000명을 동원해 국내 팬들의 높은 호응도를 증명했다.기세를 이어 1년 만에 더 큰 공연장인 고척스카이돔까지 입성했다. 관객이 빼곡하게 들어찬 스탠딩석,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는 지정석은 1년이라는 시간도 팬들에게는 길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나라가 탄핵 정국에 돌입한 상황에서도 찰리 푸스는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섰다.집회의 영향으로 일부 지하철이 혼잡을 겪는 가운데 공연은 7분가량 지연됐다. 관객의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 대기 BGM으로 뉴진스 'OMG'가 깜짝 이벤트처럼 흘러나와 재미를 안기기도 했다.가슴이 뻥 뚫리는 밴드 사운드와 함께 등장한 찰리 푸스는 착용한 하늘색 셔츠와 딱 어울리는 청량한 보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프닝곡으로 '하우 롱(How Long)'을 택한 그는 시작부터 시원시원한 발성으로 넓은 장
소설가 한강(54)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문을 낭독했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노벨 주간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진다. 한강의 강연에는 스웨덴 현지 교민, 국내 출판사 관계자를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했다.그는 “세계는 어째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그의 글쓰기를 이끌어 온 힘이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한 작가의 강연 전문. 관련 동영상은 한경닷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빛과 실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