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호스트 1호인 유난희 씨는 “쇼호스트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언어의 품격을 지키는 것이 쇼호스트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쇼호스트 1호인 유난희 씨는 “쇼호스트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언어의 품격을 지키는 것이 쇼호스트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1995년 8월1일 오후 4시, 국내 최초로 홈쇼핑 개국 생방송이 시작됐다. 쇼호스트 유난희가 7만6000원짜리 ‘뻐꾸기 시계’를 소개했다. 4시간 동안 한 이날 생방송에서 올린 매출은 1570만원. 당시 홈쇼핑을 시청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날 매출을 올려준 것은 사내 직원과 가족들뿐이었다. 첫 방송을 마친 그가 상기된 얼굴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1995년 당시 39쇼핑과 하이쇼핑 등 두 업체로 출발한 홈쇼핑 업계가 첫해 올린 매출은 고작 34억원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6개 업체가 11조2000억원(2014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3000배 이상 덩치가 커진 것이다. 홈쇼핑 첫 방송을 기억하는 현역 쇼호스트도 유난희만 혼자 남았다.

“홈쇼핑은 나의 삶이고 나 자신입니다.” 국내 쇼호스트 1호인 그는 홈쇼핑을 자신의 삶 자체라고 표현한다. 그는 1995년 39쇼핑을 시작으로 GS홈쇼핑-우리홈쇼핑-현대홈쇼핑을 거치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9개월간 휴식을 취한 뒤 그해 9월 친정 격인 CJ오쇼핑으로 복귀, 화요일 오전 방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홈쇼핑 업계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기록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홈쇼핑 초창기였던 1996년 3월 당시 39쇼핑에서 1시간에 1억원의 매출을 달성,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시간에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면 박수를 받던 시절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보석상품을 2시간 동안 판매, 7억원을 돌파했다. 원래 1시간으로 마칠 예정이던 보석판매 프로그램은 ‘대박’ 조짐을 보이면서 뒷시간을 없애고, 연장 방송을 내보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같은 신기록은 2012년 분당 1억원 매출 돌파 기록으로 이어졌다. ‘미다스의 입’이란 찬사를 듣는 이유다. 쇼호스트 입문 6년 만에 연봉 1억원을 받은 것도 그가 최초였다. 2003년에는 고용 보장이 없는 프리랜서 쇼호스트 1호로 나서기도 했다.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아름다운 독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홈쇼핑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저는 이미 나이 서른을 넘긴 주부였습니다. 39쇼핑이 쇼호스트를 뽑으면서 다른 방송사처럼 결혼 여부를 따지거나 연령 제한을 두었으면 홈쇼핑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대학 졸업 후에 방송사에 들어가려고 아나운서 시험만 22번 봐서 모두 낙방했어요. 방송사는 연령 제한이 엄격해 20대 후반부터는 포기하고 결국 서른 살에 결혼을 했지요.”

홈쇼핑과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날 무렵 토요일 오전에 늦은 아침을 먹고 신문을 보다가 광고 하나를 발견했다. ‘홈쇼핑 텔레비전이 인재를 뽑는다’는 광고였다. 광고를 본 그날이 바로 원서 접수 마감일이었다.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서류를 준비해 겨우 원서를 들이밀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다음 2차는 실기 테스트였다.

“상품 3개를 들고 가서 소개하는 게 2차 시험이었어요. 홈쇼핑의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라 회사 인사팀에 물어봤어요. 그들도 잘 몰라요. 그냥 소개하라는 거예요. 백화점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프랑스산 헤어 제품을 파는 매장이 눈에 띄었어요. 판매원들이 두피 구조와 샴푸를 쓰는 원리를 설명해주더라고요. 그걸 듣고 영감이 오더군요. 설명을 노트에 그대로 받아 적어서 달달 외웠다가 실기 때 써먹었지요. 입사한 뒤 들은 얘기지만 이 상품 설명이 최고 점수를 받아 1등으로 합격했답니다.”

그의 상품에 대한 재능은 홈쇼핑업체 입사 후 빛을 발했다. 20대를 마감할 때까지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패배감과 우울함은 말끔히 사라졌다. 숨어 있던 재능이 자존감과 절묘한 조합을 이루면서 그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대학 2학년 때 롯데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숙녀복을 판 적이 있었어요. 당시 숙녀복 과장이던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께서 판매 일을 잘한다며 칭찬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홈쇼핑 일을 하면서 ‘이게 천직이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어요. 요즘도 제가 직접 발굴해 회사 측에 제안한 상품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상품을 보면 마치 감전되듯이 대박 예감이 와요. 20년간 좋은 상품이 만들어지는 생산 현장과 시장을 끊임없이 관찰해온 덕분에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 홈쇼핑 시장은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더 오랜 일본 영국 등 선진국보다 시장 규모가 더 크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홈쇼핑의 원조 나라인 미국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발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홈쇼핑의 급속한 발전 배경에는 국민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 서구인들과 달리 한국인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남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관심이 많지요. 상품을 살 때도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구매 성향을 보이죠. 옆집 아줌마가 예쁜 옷을 입고 있으면 나도 사야 만족하는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홈쇼핑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상전벽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고 그는 회고했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엄청나게 달라졌다. 스튜디오가 1개뿐이던 시절, 쇼호스트에게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종종 일어났다. 침구류를 생방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다. 지금처럼 침대와 침구류를 사전에 준비할 여건이 안돼 사과 박스 위에 침구류를 살짝 덮어놓고 상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모서리에 살짝 앉았는데, 박스가 무너지면서 그도 나동그라졌다. 생방송이라 이 모든 장면이 전파를 탔다. 쇼호스트는 이런 돌발 상황에도 재치있는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다.

그는 결혼한 다음 당시로는 처음 접하는 쇼호스트란 직업을 가졌다. 홈쇼핑 입사 1년여 후 쌍둥이를 출산하는 바람에 워킹 맘으로 방송 일을 병행해야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 한 달간 입원하기도 했지만 방송 일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회사 측에서 낮방송으로 바꿔준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야간방송을 고집했다.

“정작 출산하고 나니 임신 때보다 더 힘든 거예요. 아이들 데리고 시장조사 하러 나가야 하고 쌍둥이다 보니 하나를 재우면, 또 하나가 일어나고. 그야말로 전쟁이었지요. 그렇지만 애들이 잠들면 나도 이제 한숨 자자는 생각보다는 책이라도 보자고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원천적으로 저는 자존감이 강한가 봐요. 조금만 나태해지면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려서부터 현모양처를 꿈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남편이 의사지만 내조만 하는 삶은 싫었어요. 커리어우먼으로 우뚝 서고 싶었어요.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셈이지요.”

현대홈쇼핑에서 명품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맡으면서 그의 이미지도 ‘명품 골라주는 여자’로 뿌리내렸다. 그가 말하는 명품론은 조금 독특하다. 루이비통, 구찌와 같은 유럽산 의류·잡화만 명품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2800원짜리 니베아도 명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상품의 가치를 알고, 가치 있게 사용하면 그게 바로 명품이란 설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밸류 스타일리스트’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쇼호스트 되려면…

아나운서·세일즈맨·마케터 '1인 3역' 소화할 수 있어야
재치·순발력도 ‘약방의 감초’


쇼호스트란 홈쇼핑 채널에서 상품 소개를 주도하며 시청자의 구매를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탄탄한 실력을 쌓아 놓으면 성과에 따라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수 있어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채용 때 연령, 성별, 학력, 결혼 유무 등 제한 조건을 두지 않는 업체가 대부분이지만 실제 채용에서는 아나운서, 리포터 등 방송 경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실기와 카메라 테스트 때 본인의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초임 연봉은 사무직과 비슷한 3000만원대로 시작하지만 매년 실적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므로 국내 200여명의 쇼호스트 중 억대 연봉자는 수십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 추산이다.

쇼호스트가 지녀야 할 자질 중 첫 번째는 아나운서의 자질이 꼽힌다. 세련되고 호감 가는 말씨로 바른 언어를 구사해야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두 번째는 세일즈맨의 자질이다. 판매를 이끌어낼 수 있는 멘트를 구사하고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끊임없는 시장 조사를 통해 시장과 유통의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마케터의 자질이다. 상품을 포장하고 판매하는 방법을 기술적으로 익혀야 하며 계층별, 세대별 소비자에 대한 분석력도 갖춰야 한다. 네 번째는 전문 MC로서의 자질이다. 대본이 없어 업체 게스트와 연예인 등 여러 명이 출연할 때 프로그램의 주인이 돼 방송을 매끄럽게 이끌어야 한다. 재치와 순발력, 위트가 필요한 이유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