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프랭크 지음 /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556쪽 / 2만8000원
《시간 연대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시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논의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부터 그리스시대의 질서정연한 우주인 코스모스,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빅뱅이론, 팽창우주, 끈이론 등 시간에 대한 인류의 철학적·물리학적 사유의 자취를 시간 순서대로 따라간다.
다른 한 축에선 구석기시대 유물부터 달력, 수도원의 시간, 시계탑, 조명, 철도, 세탁기, 인공위성, 라디오, 휴대폰, 이메일, 원자폭탄 등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이 어떻게 인간과 우주의 시간을 변화시켰는지 문화사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인류 역사에서 수수께끼처럼 얽히고설켰다”며 “시간은 변화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예로 들며 철도와 전신과 같은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상대성이론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의 핵심적 기준틀인 상대성은 갈릴레오를 비롯한 과학자들도 다뤘지만 완성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다.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 인간의 몸은 한 시간에 수십㎞씩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주가 놓이면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상대성이론의 핵심인 ‘동시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다는 것. 인간의 기술로 만든 물질이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을 함께 변화시켜 왔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시간에 대한 질문은 우주에 대한 질문과 항상 맞닿아 있다. 인간이 던진 시간과 우주에 대한 질문은 신화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시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에 대한 논쟁부터 여러 우주 존재를 예상했던 조르주 브루다노와 라이프니츠, 우주의 무한함과 유한함에 대해 이야기했던 코페르니쿠스와 뉴턴 및 아인슈타인, 시간은 환상이라며 종말을 주장한 물리학자 줄리언 바버, 시계의 불확정성을 말하는 양자우주론자 안드레아스 알브레히트까지 이들이 제기했던 의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질문들을 △우주는 하나일까 △우주는 무한한가 △우주는 스스로 존재하는가 △시간은 스스로 존재하는가 △우주는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을까 등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저자는 빅뱅이론이 특이점이란 딜레마에 빠져 종말을 맞게 됐다고 설명한다. 특이점이란 시간이 0이 되는 지점으로, 우주가 탄생한 시간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빅뱅의 순간 부피는 0이지만 질량에너지 밀도는 무한대라는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빅뱅이론의 대안으로 나온 끈이론, 양자중력이론, 브레인우주론, 다중우주 등 다른 가설들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숨겨진 차원이나 보이지 않는 다른 우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론적 모델로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검증되지 않은 ‘사이언스 픽션(SF)’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이 얽히고설켜 진화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형이상학으로 흐르는 현대물리학의 방향을 극복하고 과학적 우주론과 시간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과학적 탐구와 함께 우주론과 시간론의 공동 협력자였던 인간의 위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