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지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남경필 경기지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해 4분기 한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0.4% 성장하는 데 그쳤다. 9분기 만의 최저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3.3%에 불과해 4년째 2~3%대에서 맴돌았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3.9%에서 3.4%로 낮춰 잡았다. 한국이 ‘저성장 늪’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수원시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남경필 경기지사. 그는 저성장을 벗어나기 위한 대책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30년 묵은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 지사는 “기업의 투자 수요가 몰리는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고서는 새로운 국가 발전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수도권과 지방이 대립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요인터뷰] 남경필 "수도권 규제 풀지 않고는 저성장 늪 도저히 못 벗어납니다"
▷도지사 취임 후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체감했습니까.

“집무실 벽에 ‘수요자 중심’이라는 말을 써놓고 도정을 펼쳐왔습니다. 수요자인 도민이 가장 원하는 게 좋은 일자리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도권 규제에 막혀 일자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아요. 대다수 연구기관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 초반으로 예상합니다. 저는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저성장을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수도권 규제가 풀린다면 투자할 외국 기업이 있을까요.

“지난해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이후 경기도를 근거지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선진국 기업의 투자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을 통해 선진국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도 있고요.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의 정보기술(IT) 시장이 앞서가고 있어 ‘한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한다’고 여깁니다. 과거 경제 성장을 주도한 전통산업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앞으로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지식기반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관련 투자 수요가 경기도에 몰려 있습니다. 동두천 등 미군이 사용하다가 반환하는 공여지에 경제자유구역 수준의 혜택을 주면 대학 병원 등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중동과 중국의 자본도 있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지방과 수도권의 진영싸움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논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경제와 일자리는 경기도민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수요자입니다. 경기도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작년 새 일자리의 44%가 경기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일자리가 늘어난 혜택은 모든 국민이 받습니다.”

▷경기도에서도 규제 완화가 시급한 지역은 어디입니까.

“경기도민이 느끼는 정서적 박탈감이란 게 있어요. 옛날에는 집안 형제 중 큰형, 큰누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똑똑한 동생을 밀어주기 위해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동생이 막상 성공한 뒤에는 모른 척하고 있어요. 경기도민은 수십년 동안 서울 주민이 받아들이지 못한 화장터, 철거민 집단 이주지 등을 다 수용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역차별받는 지역이 연천군, 가평군, 양평군입니다. 이들 지역은 수도권 규제, 군사지역 규제, 환경 관련 규제에 겹겹이 싸여 있어요. 세 곳은 수도권 규제에서라도 제외해야 합니다. 행정구역만 경기도 소속이지 서울과의 거리나 낙후 정도를 보면 ‘수도권’이라고 보기도 힘들어요. 수도권의 불합리한 규제를 다른 지역 수준으로 완화해 달라는 얘기입니다.”

▷낙후지역의 규제를 푼다고 주택 개량 이상의 투자 수요가 생기겠습니까.

“연천군 등 경기 북부에는 통일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백학산업단지 주변 도로에 예산을 집중 투입해 5개 간선도로를 임기 안에 완공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기본적인 교통 인프라도 없어 투자 수요가 적었지만 도로만 개통되면 수요가 훨씬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양평군과 가평군은 자연환경이 뛰어난데 지금은 소규모 펜션 같은 시설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풀리면 숙박형 관광단지를 조성해 중국이나 아랍권 여행객이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시책 추진금 400억원을 이용해 경제활성화 프로젝트를 공모했습니다. 기존의 가평역사를 리모델링해 공연장을 만들자는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습니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려면 여러 가지 법률을 개정해야 합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규제 전체를 풀어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국토 균형발전도 중요한 가치입니다. 경기도 안에서도 남부와 북부 간 발전 격차를 줄이려고 북부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단지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용되는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하게 개선해야 합니다.”

▷정부도 내부적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다른 지역의 반대 의견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역차별 사례 위주로 완화를 건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철폐를 주장했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규제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던 공장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일입니다. 현장에 나가 기업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불합리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기업은 성장하는 데 공장을 전혀 확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자체를 믿고 규제를 사안별로 판단해 풀 수 있는 권한을 맡긴다면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식의 규제 완화는 작지만 효과가 큽니다. 자금 여력과 투자 의향을 가진 기업들이 있으니까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중요합니까.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입니다.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오더라도 정치세력이 바뀌고 하루아침에 정책이 뒤바뀌는 일이 많다면 기업인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투자에 나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지사 취임 후 지속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펼치려고 도의회 내 야당과 연정을 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부터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의회 통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올해 예산안도 합의를 통해 원만하게 처리했습니다.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추진할 때도 지역과 여야 간 소통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5선을 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이다. 만 31세이던 1998년 부친인 남평우 전 의원(신한국당)의 뒤를 이어 수원시 팔달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의원 시절 중진이면서도 소장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 정도로 개혁 성향이 강했다.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를 맡는 등 개혁 모임을 주도했다.

지난해 7월 경기지사에 취임한 뒤 해외 투자유치에 힘쓰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데 이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자 중국도 발빠르게 찾았다. 경기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북부지역의 도로 등 인프라를 정비하는 한편 문화, 상업시설 개발도 추진 중이다.

△1965년 경기 수원시 출생 △경복고·연세대 졸업. 미국 예일대 경영학 석사 △15~19대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

정리=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