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72·사진)이 6년 만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2009년 2월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관리인을 맡으면서부터 쌍용차를 이끌어온 이 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표이사 사임 이유에 대해 “쌍용차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사장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대신 고문이나 이사회 의장 등을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마리나서울에서 열린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 시승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3월 열리는 쌍용차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지난 13일 열린 티볼리 신차 발표회에서 이 사장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던 만큼 자동차업계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마힌드라 회장은 당시 “쌍용차를 법정관리에서 졸업시킨 이 사장과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 쌍용차가 재기에 성공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이날 “쌍용차가 이제 새로운 회사로 탈바꿈하는 중대한 시기라 좀 더 젊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인물이 와서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고 용퇴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직원이 5000명을 넘는 회사를 이끄는 압박감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하다”며 “재작년에 연임할 때부터 마힌드라 회장에게 올해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수차례 얘기했고,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힌드라 회장도 수긍했다”고 전했다.

이 사장은 쌍용차 대표이사 외에 22명으로 구성된 마힌드라그룹 이사회 멤버로서 그룹의 자동차 사업 전략 수립에도 관여해 왔다. 이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인도 뭄바이 본사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쳐 왔다.

회사 관계자는 “이 사장은 업무가 많으면 밤 비행기로 인도로 떠나 다음날 밤 비행기로 돌아오고 그 다음날 정상 출근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며 “마힌드라 본사에서도 이런 열정을 보고 쌍용차 경영에 있어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줬다”고 전했다.

이 사장은 현대자동차 북미법인 사장과 해외부문 사장 등을 거치며 1999년까지 30년 동안 현대차에서 근무했고 2008년엔 호텔아이파크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2009년 2월 공동관리인으로 선임되며 쌍용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1년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에 의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뒤 현재까지 쌍용차 회생을 진두지휘해왔다.

이 사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회사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고문이나 이사회 의장 등 다른 직책을 맡아 쌍용차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이 사장이 실무에서는 손을 떼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쌍용차의 미국 진출 등 글로벌 회사로 사세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사장이 갖고 있는 마힌드라그룹 이사회 자리도 당분간 유지할 전망이다.

후임 사장이 누가 될지를 묻는 질문에 이 사장은 “쌍용차는 한국 회사이며 한국 정서를 모르면 일할 수 없다”며 “마힌드라그룹이 후임으로 인도인을 선임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최종식 부사장(65·영업부문장)과 이재완 부사장(62·기술개발부문장) 등이 후임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사장은 “망해가는 자동차 회사를 살린다는 열정 하나로 쌍용차에 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현대·기아차를 제외하고는 독자적으로 차를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쌍용차”라며 “앞으로는 작지만 더 강한 회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사전 계약 물량만 4000여대에 달하는 신차 티볼리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는 “작년 10월 QM3와 트랙스 등 동급 경쟁 차량과 비교 시승을 해봤는데 성능이 가장 좋았다”고 강조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