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W3’.
오는 21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W3’.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훨씬 전인 1974년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라는 인터넷 세상을 구상했다. 당시 미국 록펠러재단에 저술 지원을 요청했고, 1만2000달러를 받아 1976년 독일에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플래닝-26년 남았다’라는 책을 펴냈다. 1994년에는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을 발간했다.

인터넷 사회의 도래를 시각예술로 예견한 백남준이 타계한 지 오는 29일로 9년을 맞는다. 올해도 추모 행사와 다채로운 전시회가 열리지만 백남준의 작품값(경매 최고가 기준)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에 비해 130분의 1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최대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는 백남준의 작품 가격이 저평가됐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11월 백남준을 전속 작가로 전격 영입했다. 앞으로 작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학고재·현대 등 9주기 특별전

백남준 작품 최고가 7억원…앤디 워홀 130분의 1 수준
미술계는 올해도 백남준의 예술적인 혼을 알리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학고재갤러리는 새해 첫 기획전으로 21일부터 내달 15일까지 ‘W3’전을 열어 백남준을 재조명한다. 지난해 하반기 중국 항저우 삼상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과 학고재상하이점에서 이어진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 전시에서 소개된 백남준의 작품 12점을 내보인다. 디지털 세상을 64개의 모니터로 묘사한 ‘W3’도 관람객을 맞는다.

갤러리 현대도 오는 4월 개관 45주년 기념전으로 백남준을 선택했다. 현대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파우스트’ 시리즈를 비롯해 퍼포먼스 사진, 그림,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을 내보일 예정이다. 경기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도 오는 29일부터 6월21일까지 ‘TV는 TV다’를 주제로 백남준 추모전을 개최한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은 작년 11월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백남준 비디오 아트 작품 9점을 구매해 특별전을 열고 있다.

우찬규 학고재 갤러리 회장은 “백남준의 큰 조카이자 법적 대리인인 켄 백 하쿠다가 지난해 11월 가고시안갤러리와 백남준의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전시회가 활기를 띠고 있다”며 “가고시안 측이 백남준 10주기인 내년에 프랑스 유명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 관리 미흡이 저평가 불러

국내외 미술계의 ‘백남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격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화랑가와 경매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크기와 작품성에 따라 점당 1억~7억원, 판화는 200만~300만원, 드로잉은 600만~700만원, 페인팅은 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앤디 워홀은 물론 한국의 이우환,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구사마 야요이, 중국의 쩡판즈·장샤오강 등 아시아권 작가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1995년작 ‘라이트 형제’가 2007년 홍콩크리스티 경매에서 503만홍콩달러(약 7억원)에 팔려 백남준 작품 가운데 낙찰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앤디 워홀의 1963년작 ‘세 명의 엘비스’는 지난해 8190만달러(약 900억원)에 팔렸다. 미술시장의 한 관계자는 “백남준 작품의 경우 유화나 조각에 비해 ‘가짜’를 만들기가 쉽고 유족의 작품 관리가 미흡하다는 점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국 회화작가 장미셸 바스키아 등 세계 유명 작가의 경우 작고 이후 작품값이 10~100배나 치솟은 것에 비하면 백남준의 작품값은 너무 저평가됐다”며 “최근 스마트폰이 제2의 디지털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비디오 아트의 가격 상승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