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20일 KCC현대중공업 주식을 3000억원어치 사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다음날 현대중공업 주가는 6% 가까이 급등했다. ‘투자 달인’으로 평가받는 KCC가 주가를 ‘바닥’으로 평가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며 추종 매수세가 붙었기 때문이다. KCC는 현대자동차, 제일모직 등 상장사 투자로 취득가 대비 세 배 이상의 평가이익(5230억원)을 올리고 있다.

‘1000억원 클럽’ 88개사

‘주식 부자’ 기업은 KCC뿐만이 아니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국내 상장사 1681개 가운데 주식과 채권 투자금액이 1조원을 넘는 제조·서비스 상장사는 16곳에 달한다. 이 중 9곳은 5000억원 이상의 평가이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매도가능금융자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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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채권 부자 1위는 12조3177억원어치를 보유한 삼성전자다. 이어 삼성물산 현대중공업 포스코 삼성SDI 현대자동차 롯데제과 KCC SK 현대미포조선 이마트 등이 매도가능금융자산 ‘1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1000억원을 넘는 기업도 신세계 롯데칠성 현대그린푸드 CJ 롯데쇼핑 고려아연 KT 등 88곳이나 됐다.

대기업이 주식과 채권을 들고 있는 이유는 순환출자나 경영권 방어 등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다른 기업과 사업적 제휴나 신규 사업 진출 등을 위한 지분 투자도 있다. 상당수는 오랜 기간 자산을 보유하면서 저절로 주식 부자가 됐다. 긴급할 경우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든든한 자산을 들고 있는 셈이다.

‘1조원 클럽’ 중 평가이익을 가장 많이 내고 있는 곳은 삼성물산이다. 취득가 대비 평가이익이 6조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은 주당 6만6000원대에 삼성전자 주식을 사 현재 지분 3.5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6일 종가가 131만6000원임을 감안하면 투자원금이 20배로 불어났다.

일성신약, 평가이익 1400억원

단순 투자 목적으로 주식을 보유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투자 고수’도 있다. 제약업체인 일성신약이 대표적이다. 매도가능금융자산 평가이익이 1400억원으로 3년 평균 영업이익의 67배나 된다. 보유종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삼성물산 주식이다. 일성신약은 2004년 삼성물산 지분 2%를 단순 투자 목적으로 주당 평균 2만4400원에 사들였다. 삼성물산의 16일 종가 5만5200원 기준으로 수익률은 126%다.

피혁업체인 조광피혁은 기관투자가 버금가는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가치주로 평가받는 동아타이어, 조선내화, 삼양통상, 대한제분, 태광산업, 광주신세계 등을 2009년과 2010년에 매입한 데 이어 2013년엔 해외 주식인 애플과 벅셔해서웨이 주식까지 사들였다.

투자 비중 과도하면 유의해야

주식·채권 부자 기업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가 문제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매도가능금융자산은 재무제표상 현금성 자산이 아니지만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매각해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숨어 있는 현금성 자산’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시장이 좋지 않은 시기엔 투자 손실을 볼 수 있어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 대상 중 총자산 대비 매도가능금융자산 비중이 10%가 넘는 곳은 87곳이었다. 9개 기업은 비중이 30%가 넘었다. 여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롯데관광개발은 총자산의 70%가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채워져 있었다. 사업이 무산된 용산 국제업무지구 드림허브프로젝트 지분 15% 등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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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정/이유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