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1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해롤드 & 모드’.
오는 3월1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해롤드 & 모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해롤드 & 모드’는 1971년 말 개봉한 동명 영화(Harold and Maude)에서 출발했다. 미국 개봉 당시 영화는 한마디로 망했으나 이후 대학 캠퍼스나 변두리 소극장 등에서 다시 살아났다. 소수 집단이 광적으로 숭배한다는 이른바 ‘컬트 영화’가 됐다. 19세 청년 해롤드의 핏빛 가득한 자살놀이나 해롤드와 80세 할머니 모드의 진한 키스신 등 영화 속 장면들은 다수 대중에게 외면받고 소수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연극은 그렇지 않다. 다수 대중이 지지할 만한 무대다. 컬트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불쾌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환하고 긍정적이다. 엄마의 말대로 ‘결혼할 나이’가 됐으나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해롤드와 곧 80회 생일을 맞는 자유분방한 모드가 만나 깊은 우정을 쌓다가 사랑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유쾌하게 그린다.

시공간적 배경이 극 중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68혁명’이나 히피로 대표되는 1960년대 서구 젊은이들의 저항 문화와 생명존중 운동의 정신이 표출된다. 당시 ‘청년 문화’가 내건 정신을 체화(體化)하고, 설파하고, 실천하는 인물은 19세 해롤드가 아닌 80세 모드다. ‘살아있는 시체’와 다름없는 해롤드는 무정부주의적인 모드를 따라다니며 생기를 되찾는다.

극 중 가장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19세 남자와 80세 여자의 ‘사랑’은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순수하고 아름답고 안정된 흐름에 안도감이 들 만도 하지만 혹시라도 ‘컬트 연극’을 기대했다면 다소 싱겁게 느껴질 법하다. 방황하던 젊은이가 현명한 노인을 만나 주체적인 삶의 의미와 자세를 배우고 깨닫는 성장 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드 역을 맡은 ‘한국 연극계의 대모’ 박정자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동양 현자 같은 모습도 그런 느낌을 강화한다.

효율적인 공간 분할과 영상 및 조명의 활용으로 장면을 매끄럽게 이어가고 분위기를 연출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바다표범의 객석 난입,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엄마와 정신과 의사의 통화 장면 등 관객의 몰입을 조정하는 ‘거리두기’ 장치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배경을 서술하는 영상은 관객의 상상을 제한하는 측면에서 호불호로 나뉠 수 있다. 오는 3월1일까지, 3만~6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