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정비법에 막혀
생산라인 변경 못하고
추가 투자도 법에 걸려
관할 지자체도 '답답'
구조조정 지연…신규고용 ‘제로’
1982년 설립된 이 공장이 갑자기 활기를 잃은 것은 2001년 라면 생산을 중단하면서다. 농심 삼양식품 등과의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사업구조 재편이 불가피했다.
이때부터 수도권 규제의 재앙이 시작됐다.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과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이 생산라인 구조조정을 막고 나선 것. “라면 라인을 뜯어낸 뒤 2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치즈 등 다른 제품을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박병구 빙그레 광주공장 공장장의 얘기다. 당시 광주공장의 생산 부지는 5만8805㎡. 수정법상 자연보전권역에 있어 공장면적 제한기준인 6만㎡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5200㎡의 부지를 추가해 라인을 확장하겠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신규 투자를 포기하고 라면 라인을 제품 용기를 만드는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강구해봤지만 추가 부지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라인이 있던 공간은 분유 창고로 변해버렸다. 라면을 쌓아놓던 창고(2204㎡)는 14년째 놀리고 있다. 생산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바람에 직원 수는 계속 감소했다. 2001년 이후 광주공장 전체의 생산직 신규 채용은 0(제로)이다.
광주시 “우리도 너무 답답하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광주공장의 난감한 처지는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라면 창고(항공사진 속 A)를 같은 공장 내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는 유음료 공장 옆(B)으로 옮기려던 계획도 수정법에 저촉돼 틀어져 버린 것. 회사 측이 창고 이전 계획을 세운 것은 “어차피 기존 창고 활용이 불가능하다면 이 창고를 없애는 대신 요플레 등을 생산하는 유제품공장 옆에 새로운 창고를 만드는 것이 낫겠다”(박병구 공장장)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유제품은 공장에서 37㎞ 떨어져 있는 경기 남양주 물류센터로 보내진 뒤 저온유지가 가능한 특수차량에 실려 수도권으로 배송됐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운 창고를 지어 남양주 물류센터를 대체할 수 있다면 연간 5억원의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신선제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공장 바로 옆에 둬야 70% 선에 머물고 있는 가동률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정법에 걸렸다. 기존 창고를 헐든, 헐지 않든 새로운 창고를 짓는 것 자체가 증축 내지 신축으로 해석된다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설명이었다. 이상학 빙그레 광주공장 총무팀장은 “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경기도, 광주시와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공장 문제를 광주시 측에 문의해봤다. “수도권 규제를 전반적으로 풀지 않고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이런 개별적인 규제를 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저희나 딱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정진호 규제개혁추진단장의 대답이다.
■ 공장총량제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인천 경기 등 3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3년마다 한 번씩 공장 신축 면적을 총량으로 지역별로 설정하는 제도. 규제 대상은 건축물 연면적이 500㎡ 이상인 공장.
광주(경기)=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특별취재팀 조일훈 경제부장(팀장) 정인설(산업부) 김재후·김주완 (경제부) 김은정(국제부) 강경민(지식사회부) 이현일(건설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