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사회적 비용 年 20조…손 놓은 정부
한국인은 건강을 위해 담배는 덜 피워도 술에 쓰는 돈은 줄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와 관련된 질병 의료비는 연간 2조원을 넘었다. 정부가 금연 정책에만 힘을 쏟고 음주 관리 정책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5일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명 이상 가구가 담배를 사는 데 쓴 돈(담배 소비)은 월평균 1만7317원(3분기 기준)으로 2007년 2만1079원보다 크게 줄었다. 전체 소비지출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도 1.05%에서 0.66%로 떨어졌다. 흡연에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등 강력한 억제 정책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주류 소비는 8년째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월평균 주류소비액은 1만4160원으로 2007년 7335원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0.36%에서 0.50%까지 높아졌다. 음주 관련 질병의 진료비는 2007년 1조7057억원에서 2011년 2조4336억원으로 불어났다.

음주 관리 정책이 흡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한국 음주 억제 정책 점수는 7점(21점 만점)으로 조사대상 30개국 중 22위였다. 점수도 평균(9.7점)보다 훨씬 낮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음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사회적 반발을 우려해 사실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공원 병원 등 공공장소를 금주 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몇 차례 내놨지만 입법화에는 실패했다.

정부가 술에도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을 도입, 술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헛바퀴만 돌고 있는 장소 규제가 아니라 보다 실효성 있는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장 효과가 높은 가격 정책을 도입해 판매가격을 높여 음주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주에 따른 사회 경제적 비용은 흡연보다 훨씬 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의료비용에 음주로 인한 생산성 저하, 음주 사고 피해액 등을 합칠 경우 연간 20조99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술 판매가격을 올려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음주를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011년에도 복지부 보건의료미래위원회는 술에 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하고 확보한 재원은 알코올 중독자 치료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서민 증세라는 비판에 술 산업 규제 논란까지 겹쳐 실행되지 못했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